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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승부사 하림 김홍국] 병아리 10마리로 재계 30위 우뚝…불가능 모르는 ‘베팅의 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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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경 기자

승인 : 2025. 10. 22. 17:24

축산·해운업…20년간 과감한 M&A
팬오션에 1兆 베팅, 결국 3배로 키워
하림 '한국판 카길 꿈' 여전히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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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 10마리에서 출발해 재계 30위, 자산 약 20조원 규모의 글로벌 종합식품기업을 일궈낸 인물이 있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선대의 기반을 물려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창업해 성장시킨 대표적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11살 때 외할머니가 선물해 준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판 경험은 사업가로서 첫걸음이었다. 김 회장은 닭 한 마리의 생애주기와 농가 경제의 흐름을 몸으로 배웠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김 회장의 좌우명이다. 2015년 김 회장은 이 말을 증명하듯 법정관리 중인 팬오션을 1조80억원에 인수하겠다고 나섰다. "식품회사가 해운사를 왜 사냐" "무모한 베팅이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김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인수 금액의 절반 이상을 차입금으로 조달하면서까지 베팅을 강행했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하림그룹이 팬오션을 인수한 지 10년이 된 현재, 회사는 하림그룹을 재계 50위권 밖에서 30위로 끌어올린 '게임체인저'가 됐다. 앞서 김 회장은 2001년부터 천하제일사료, 선진, 팜스코 등을 차례로 인수하며 '곡물→사료→축산→가공→유통'으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하나씩 완성해 왔다. 팬오션은 그 마지막 퍼즐이었다. 우려 속에서도 베팅하고, 승부수를 던진 '승부사' 김 회장은 20년간 과감한 M&A로 대기업집단을 일궜다.

김 회장의 과감한 베팅은 2001년부터 본격화된다. 첫 번째는 천하제일사료. 사료 생산 회사를 계열사로 편입시키며 닭 사육에 필요한 사료를 자체 조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같은 해 5월 유통 채널 확보를 위해 한국농수산방송(현 NS홈쇼핑)을 34억원을 출자해 개국하며, 또 하나의 도전을 시작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는 축산업 영역 확장에 집중했다. 주원산오리(2002년), 선진(2007년), 팜스코(2008년)를 차례로 인수하며 닭고기를 넘어 오리, 돼지까지 아우르는 종합 축산기업으로 거듭났다. 당시 육계 시장에서 20% 점유율로 국내 1위를 달리던 하림은 양돈과 사료 분야에서도 주요 사업자로 자리 잡았다.

김 회장은 2011년 태평양을 건넜다. 당시 세계 19위 닭고기 업체였던 미국 앨런패밀리푸드를 인수한 것이다. 델라웨어주에 위치한 이 회사의 인수는 하림의 첫 글로벌 진출이자, 미국 민주당 정치인들과의 인연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30년 넘게 상원의원을 지낸 델라웨어주에 투자하고 고용을 창출한 김 회장은 2021년 바이든 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기도 했다.

2015년은 김홍국 회장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승부수를 던진 해다. STX그룹이 무너지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간 팬오션이 매물로 나왔다. 곡물, 석탄, 철광석 등을 운송하는 국내 최대 벌크 전문 선사인 팬오션은 지난 2013년 회생절차에 들어간 상태였다. 김 회장은 인수금으로 1조80억원을 제시했다. 당시 업계는 고개를 저었다. "양계업 회사가 대형 해운사를 운영할 능력이 있겠냐"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인수금의 절반 이상인 5680억원을 차입금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에 '승자의 저주'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김 회장은 곡물 생산부터 자사 보유 벌크선으로 글로벌 유통까지 운영하는 세계 최대 곡물회사인 '카길(Cargill)'처럼 '한국판 카길'이 되겠다는 목표로 인수를 강행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팬오션은 2015년 7월 법정관리를 공식 종결했고, 2014년 1분기 실적 턴어라운드 성공했다. 2015년 1조8000억원이던 연매출은 2024년 5조1612억원으로 약 3배 뛰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2298억원에서 4712억원으로 2배 증가했다. 재무구조도 개선됐다. 2013년 회생절차 당시 1900%를 넘었던 부채비율은 현재 100% 아래로 떨어졌다. 해운업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우량한 재무구조를 갖추게 됐다.

지난해 기준 팬오션은 하림그룹 전체 매출액의 41.3%를 차지한다. 계열사 중 매출 규모가 가장 큰 '효자'가 된 것. 하림그룹은 2017년 팬오션 덕분에 자산 10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대기업집단에 포함됐다. 또한 팬오션 인수를 기점으로 곡물 수입부터 해운·사료·축산·가공·유통까지 전 과정을 내부화해 글로벌 공급망 위기 속에서도 안정성을 확보했다.

팬오션 인수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김 회장은 지난 2023년 또 한번 승부수를 던졌다. 국내 유일 컨테이너 선사이자 글로벌 8위 해운 업체인 HMM(옛 현대상선)이 타겟이었다. 인수가 성공한다면 하림그룹은 국내 1위 벌크선사 팬오션과 국내 1위 컨테이너선사 HMM을 동시에 거느리는 초대형 해운그룹으로 탄생할 기회였다. 다만 자금 조달 능력, 경영권 문제, 영구채 전환 문제 등에 있어 인수 측과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고, 결국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HMM 인수는 좌절됐지만 하림그룹의 '한국판 카길' 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팬오션을 통해 곡물 유통부터 해운까지 밸류체인을 완성한 김 회장은 다음 기회를 엿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팬오션 인수 성공 경험이 있는 만큼, 김 회장은 적절한 시기에 다시 도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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