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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외교관 이일규 “김정은, 트럼프 만날 이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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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기자

승인 : 2025. 10. 09. 18:04

전 쿠바주재 북한대사관 외교관 도쿄외신기자클럽서 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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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지금 트럼프를 만날 이유가 없습니다. 북러 밀착을 통해 협상력을 끌어올린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탈북 외교관 이일규 전 쿠바주재 북한대사관 참사관은 9일 도쿄 외신기자클럽(FCCJ)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최영재 도쿄 특파원
"김정은은 지금 트럼프를 만날 이유가 없습니다. 북러 밀착을 통해 협상력을 끌어올린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탈북 외교관 이일규 전 쿠바주재 북한대사관 참사관은 9일 도쿄 외신기자클럽(FCCJ)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단언했다. 그는 "현재 김정은의 외교 우선순위는 첫째 러시아, 둘째 중국, 셋째 미국이며, 일본은 그 다음 과제"라며 "한동안 미북정상회담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시아투데이가 "북한의 북핵·인권탄압·3대 세습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라고 묻자 "핵 문제, 인권 문제, 세습 구조 모두 미북정상회담 같은 일회성 이벤트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북한의 근본적 변화에는 인내와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일규 전 참사관은 북한 외무성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인물이다. 1999년 외무성에 입부해 라디오과, 중남미과, 정책분석부 등을 거쳤고, 쿠바 대사관 참사로 근무하다 2023년 11월 가족과 함께 망명했다. 그는 "북한 체제에 대한 환멸이 누적돼 있었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탈출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 같았다"고 탈북 배경을 설명했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핵심 메시지는 '북한의 엘리트조차 체제의 희생양'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엘리트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감시하고 경쟁하는 노예적 구조 속에 갇혀 있습니다. 자유는커녕 생존조차 복종으로만 보장되는 사회입니다."
그는 "북한은 '인민 중심 복지국가'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을 위해 모두가 복종하는 정글 사회"라며 "그것이 북한의 본질"이라고 했다.

◇ "북러 밀착, 북한 외교의 최대 승부수"

이 전 참사관은 특히 북러 관계를 "김정은 체제의 생명선"으로 규정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북한 외무성은 해외 공관에 '중립을 지키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이 이를 뒤집고 러시아 지지를 선언했을 때, 외교관 대부분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결정은 북한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북한은 러시아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방패로 삼고, 석유·식량 등 실질적 지원을 확보했다"며 "그 덕에 한반도에서 북한의 지정학적 입지가 한층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이 전 참사관은 "러시아가 미국과 완전히 화해하지 않는 한, 북러 밀착은 장기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며 "북한은 이를 기반으로 자신감을 회복했고, 한미일 공조에도 새로운 안보 위협을 던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북중러가 공동 이해관계에 따라 일시적으로라도 전략적 융합을 이룬다면, 그것은 기존의 동맹보다 더 강력한 결속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 "북한의 일본관, '관심은 크지만 협상은 먼 미래'"

이일규 전 참사관은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북한은 일본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미관계가 정리되기 전에는 북일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어렵습니다."
그는 "북한은 고이즈미 총리 방북 당시 '정치적 사과'는 받았지만 '경제적 보상'을 받지 못한 기억이 있어, 이번에는 경제적 보상 확약이 없는 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본 기자들의 북한이 저지른 '일본인 납치(납북) 문제' 관련 질문에 대해 그는 "북한은 이미 김정일 시대에 납치 사실을 인정했다"며 "지금도 '우리는 약속을 지켰지만 일본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 "중국, 북핵을 절대 용인하지 않는다"

그는 또 북중 관계에 대해 "겉으론 우호를 말하지만, 실상은 긴장된 관계"라고 평가했다.
"2005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김정일은 외교관들에게 '오늘 우리가 넘은 큰 산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만 봐도 중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얼마나 싫어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일규 전 참사관은 "중국은 대만 문제로 미국과 충돌 중이라 당장은 침묵하고 있을 뿐, 북핵을 용인하지는 않는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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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참사관은 기자회견 말미에 "한미일 공조는 대한민국의 생명선이지만,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려는 외교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최영재 도쿄 특파원
◇ "압박만으로 북한은 변하지 않는다"

이 전 참사관은 기자회견 말미에 "한미일 공조는 대한민국의 생명선이지만,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려는 외교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압박 하나만으로는 북한을 절대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제재와 인권 공세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 대국들의 이해관계 때문입니다."

◇ "북한 사회, 내부에서 조용히 변하고 있다"

이 전 참사관은 "K드라마와 K문화 등 외부 정보의 유입이 북한 사회를 서서히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한국을 '착취의 나라'로 배웠지만, 지금은 젊은 세대일수록 한국을 선망합니다. 외부 정보를 접한 북한 주민들은 체제의 모순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만큼 감시와 통제도 강화되고 있죠."
그는 "김정은이 자유를 허용하는 순간, 자기 체제가 무너진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민주화는 스스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북한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고 강조했다.

◇ "한반도 평화통일, 유일한 길은 '평화적 접근'"

그는 남북관계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한반도에서 다시는 6·25 같은 비극이 반복돼서는 안 됩니다. 압박과 대화, 유화와 제재가 균형 있게 결합될 때 가장 현명한 대북정책이 나올 것입니다."
그는 "평화적 통일은 대한민국 국민이 추구해야 할 원칙"이라며 "정부가 보수든 진보든, 서로의 정책을 보완하고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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