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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5. 06. 26. 15:05

'한국 현대 추상미술 거목' 서승원 개인전 'The Interplay'
삼청동 PKM갤러리서 7월 12일까지...근작 20여 점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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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원 개인전 'The Interplay' 전경. /PKM갤러리
전시장에 들어서자 고요한 명상의 공간이 펼쳐졌다. 벽면을 가득 채운 서승원(84) 화백의 근작들은 마치 창호지 너머 스며드는 햇살처럼 은은하고 부드러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서 화백은 한국 현대 추상미술을 이끌어 온 거목이다. 그의 개인전 'The Interplay'가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7월 12일까지 열린다.

서 화백이 1960년 홍익대 미술대학에 진학했을 당시, 국내 화단은 국전 중심의 사실주의와 이에 대항한 앵포르멜이 대세였다. 하지만 그는 "왜 서구미술을 배우고 사실주의에 순응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다른 길을 택했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서 화백은 "20대부터 오늘까지 비구상미술을 고집하며 조금도 현실에 타협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꽃 그림, 미인도, 사실주의, 풍경화가 유행할 때도 그런 미술을 넘보지 않았어요. '그림이 안 팔려도 좋다', '오직 내 길만 가겠다'는 생각으로 작품 세계를 지켜왔습니다."

1. Suh Seung-Won, Simultaneity 23-617, 2023
서승원의 'Simultaneity 23-617'. /PKM갤러리
1960년대부터 서 화백은 기하추상 그룹 '오리진'과 전위미술 단체 '한국아방가르드협회'의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선과 면의 단순하고 기하학적 형태를 추구했다. 당시 그의 작품은 '자를 대고 그린 그림'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그의 작업은 극적으로 변화했다. "기하학적 추상 미술을 통한 새로운 미술의 질서 찾기 운동을 하다가, 2000년대부터는 기하학적 추상을 해체하고 평면에서 내면으로 스며들 수 있는 한국적인 미술이 무엇인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전시장을 돌아보며 서 화백은 자신의 작업 철학인 '동시성'에 대해 설명했다. 1967년부터 50여 년간 천착해온 이 개념은 그가 나고 자란 한옥에서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격자 문양의 문창살이 기하학적 구성의 토대가 됐고, 창호지 너머 어른거리던 햇볕과 달빛이 지금의 빛과 색이 진동하는 화면으로 승화했습니다. 어머니가 다듬이질로 흰옷을 빨래하던 방식도 제 특유의 '걸러진' 색을 만들어냈죠."

실제로 전시된 근작들을 보면 초기 오방색이 오랜 시간 걸러지고 정제되어 투명하고 맑은 빛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배면에서 스며 나온 듯한 색채들이 경계 없는 사각 형태로 화면 위를 부유하며, 서로 다른 색면들이 상호 침투하며 무한한 공간감을 창조한다.

3. Suh Seung-Won, Simultaneity 22-707, 2022
서승원의 'Simultaneity 22-707'. /PKM갤러리
이번 개인전 'The Interplay'에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제작된 100호 미만의 근작 20여 점이 엄선되어 전시됐다. 물리적 스케일보다는 밀도와 깊이에 초점을 맞춘 선택이다.

전시장 곳곳에서 화면과 화면, 작품과 공간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특별한 공기를 느낄 수 있다. 형상과 여백, 조화와 긴장이 만드는 율동감이 관람객의 내면 깊숙이 스며든다. "단순한 이미지의 집합이 아닌, 하나의 우주로서 구현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명상 공간, 하나의 우주가 되어 있다.

84세의 나이에도 서 화백의 예술적 탐구는 계속되고 있다. "'철저하고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제는 더 깊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구상미술이나 선배들의 미술에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미술을 구현하려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제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서승원 작가 전혜원 기자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서승원 화백. /사진=전혜원 기자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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