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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합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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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1. 11. 17:28

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 <70회·끝>
송재윤
송재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
70회로 '외계인에 들려주는 지구인의 세계사'는 끝을 맺습니다. 그동안 흥미로운 글을 보내주신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님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주>

◇ 지구인의 네 가지 행동 유형

지구인은 날마다 분주하게 나다니며 수많은 활동을 한다. 지구인의 문명사는 끊임없이 전개되는 인간적 활동의 총체적 결과라 할 수 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지구인의 사회적 행동을 전통적 행동, 감정적 행동, 목적-합리적 행동, 가치-합리적 행동의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전통적 행동이란 오랜 시간 사회적으로 반복되고 문화적으로 전승된 다양한 유형의 숱한 행동을 의미한다. 설날 아침 가족들이 모여서 차례를 지내거나 일가친척의 결혼식에 찾아가 부조금을 전하고 가족사진을 촬영하는 등의 활동은 전형적인 전통적 행동이다. 날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어른들이 열심히 돈벌이에 나서는 일도 모두 오랜 세월 사람들이 행해 온 전통적 행동이다. 유교에서는 모든 전통적 행동을 한마디로 예(禮)라 부른다. 인간의 사회적 활동의 90% 이상이 예에 맞는 전통적 행동이라면 과언일까?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1889년)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1889년). Wikimedia Commons.
이에 반해 감정적 행동이란 외부 자극에 대한 정서적인, 흔히 격정적이고 즉각적인, 때론 맹목적이고 즉흥적인 반응 등을 의미한다. 감정적 행동이라 해서 반드시 전통적 행동의 범주를 벗어난다고 할 순 없다. 예컨대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심심찮게 발생하는 명예 살인(honor killing)의 경우, 격분한 가부장이 가족을 모독한 식구를 처형하는 전통적 행위라 할 수 있다. 반면 방황하는 청소년이나 사회적 부랑아의 감정적 행동은 대개 전통이나 규약에 어긋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목적-합리적 행동이란 특정 목적의 달성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과 전략을 채택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대부분 기업인의 경제활동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이윤 극대화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합리적 판단에 따른다. 군사적 행동도 마찬가지다. 베네수엘라에 침투해 마두로를 체포한 미군의 '단호한 결의 작전'은 목적 달성을 위한 합리적 행동의 결정체였다. 목적-합리적 행동이 반드시 전통적 행동의 범위를 벗어나진 않는다. 대부분의 군사작전은 전통적 야전 수칙(field manual)에 따른다.

마지막으로 가치-합리적 행동이란 한 개인이 스스로 선택한 내면적 가치에 따라, 그 가치를 몸소 구현하기 위해서 취하는 행동을 이른다. 정치적 자살, 이타적 헌신, 자학적 구도행, 비영리적 예술 활동, 과학적 탐구, 철학적 번뇌 등은 생물학적 본능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인간의 특이한 행동이다.

미얀마 승려들 (2018년)
미얀마 승려들 (2018년). Wikimedia Commons.
◇ 가치를 지향하는 인간의 극단성

이 네 가지 중에서 가치-합리적 행동이야말로 지구인을 지구인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모든 생명체와는 달리 지구인은 스스로 믿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때론 목숨을 바칠 정도까지 극단적 행동을 몸소 구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종이다. 지구인의 문명사를 설명하기 위해선 인간 특유의 가치-합리적 행동에 주목해야만 한다. 문명을 일으키고 발전시킨 원동력은 자연의 질서와 세상의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인간 고유의 순수한 호기심, 상상력, 탐구 정신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 제1장 첫 문장을 "인간은 본성상 알고 싶어 한다"는 명제로 시작한다. 실용적 효용이 없는데도 안 풀리는 문제를 붙잡고 끙끙 매는 인간의 집요한 호기심이 없었다면 문명은 일어날 수 없었다. 문명의 기초엔 탐욕, 지배욕, 정복욕뿐만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 상상력, 창의력, 탐구 정신이 놓여 있다.

지구인은 또 소리와 빛의 세계에서도 절대미(絶對美)를 찾아서 극단까지 치고 올라가는 희한한 동물이다. 50분 가까이 이어지는 베토벤 소나타 29번을 기계처럼 정확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연했던 폴리니(Maurizio Pollini, 1942~1924)의 피아노 연주는 청각의 세계에서 인간이 음악적 완벽성을 최극단까지 밀고 나간 대표적 사례라 할만하다. 불과 10년 만에 광적인 집요함으로 2200여 점의 작품을 남기고서 서른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그림 그리기는 시각의 세계에서 인간이 미술적 탁월성을 극한까지 추구했던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두 사람 모두 각 분야에서 아름다움의 극점까지 나아갔다는 점에서 좋은 의미로 '극단적' 인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호모 사피엔스의 수월성 추구는 청각이나 시각의 세계에 머물지 않는다. 미각, 후각, 촉각의 세계에서도 호모 사피엔스는 어김없이 최극단까지 나아간다. 어느 문명권에서나 수천 년 전통을 자랑하는 음식 문화가 다채롭게 발달해 있다. 위스키, 코냑, 보드카, 바이쥬(白酒), 사케, 럼 등등 주류(酒類), 향수(香水), 마약(痲藥)까지 감각적 만족을 극대화하는 문명의 부산물은 거의 무한대의 다채로움을 보인다. 신체를 특수하게 단련하여 신기에 가까운 몸동작을 연출하는 댄서, 요기, 무도인들 역시 촉각의 세계에서 극단까지 나아간 인물들이다.

◇ 지구인의 정신적 이상주의

흥미롭게도 호모 사피엔스는 감각적, 육체적 쾌락만을 좇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 영생과 불멸을 추구하는 정신적 극단성도 보인다. 고대 그리스의 철인 중에선 플라톤(기원전 428?~348?)이야말로 바로 그러한 정신주의적 완벽성을 극단까지 밀고 갔던 대표적 인물이다. 플라톤은 세상의 모든 것이 이데아의 불완전한 모방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사유에 따르면, 점, 직선, 원, 정삼각형 등의 수학적 개념은 현실에선 구현될 수 없다. 점이란 공간에서 길이, 두께, 넓이, 깊이도 없는 0차원의 위치를 의미하므로 종이에 연필로 점을 찍는 순간 점은 이미 점이 아니다. 직선이란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일진대, 자를 대고 아무리 정확하게 선을 그어도 완벽한 직선일 순 없다. 수학적으로 원이란 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놓인 모든 점의 집합을 의미하므로, 컴퍼스로 종이 위에 그린 원은 완벽한 원의 모사일 뿐이다. 플라톤 철학은 인간의 추상적 사유 능력을 계발시키면서 동시에 정신적 완벽주의와 이상적 극단주의를 낳는다.

장구한 문명사에서 지구인의 극단성은 창조와 파멸의 양극단으로 나타났다. 창의적 극단성은 문명을 일으키고 끊임없이 드높여 온 근원적인 정신적 동력이지만, 파멸적 극단성은 문명을 무너뜨리고 인류의 공멸을 초래할 수 있는 심리적 병증이다. 양자는 상극의 다른 성향처럼 보이지만 결코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창의적 극단성에서 파멸적 극단성이 발휘될 수도 있고, 그 역이 참일 수도 있다. 창의적 극단성과 파멸적 극단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딱 붙어 있어서 떼려야 절대로 뗄 수가 없다.

인류 문명의 수월성은 한계를 넘어서려는 지구인 특유의 극단성을 보여준다. 문명을 일으킨 지구인의 극단성을 선악과 시비의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가 없다. 인류의 문명사를 죄악시하거나 찬양할 필요도 없다. 문명의 미래를 낙관하거나 묵시론적 비관론에 빠질 필요도 없다. 다만 지구인의 문명사를 이끌어온 가장 원초적 동력은 생존의 필요에 따른 목적-합리성이 아니라 정신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가치-합리성이었음을 상기해야지 않을까. 지구인을 지구인답게 만든 가장 원초적 동기는 모든 면에서 한계를 극복하려는 강렬한 의지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에서 외계인 미도가 지어준 지구인의 이름은 호모 울트라누스(Homo Ultranus), '넘어서는 인간'이다.

송재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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