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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사를 만든 근본 동력은?
2010년대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의 유발 하라리(Yuval Harari)가 출판한 '사피엔스'는 전 세계에서 250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위에서 다른 모든 종을 누르고 대승리를 이룬 이유를 7만년 전 인류의 뇌에서 발생한 인지적 혁명에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민족, 국가, 인류 등의 허구(fiction)를 실체(實體, substance)라 여기는 사피엔스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낯선 타인들과의 대규모 연대와 집단적 협력을 가능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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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적 혁명에 따른 창의적 상상력을 인류 문명의 근본 동력이라 간주하는 하라리의 이론은 큰 설득력을 발휘한다. 그의 설명대로 문명이란 신화, 제도, 가치, 문화를 공유하는 "지혜로운 인간"들이 대규모의 집단적 협업을 통해 만들어낸 "상상의 질서(imagined orders)"라 할 수 있다. 하라리가 인류사 모든 질서와 제도를 상상의 산물로 간주하는 이유는 그 모든 것이 실은 정교한 언어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인간들의 두뇌 속에서만 존재하는 믿음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인간은 각자 믿는 바를 위해 때론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하라리의 지적대로 인간 사회에서 다수가 신뢰하는 '픽션'이 물리적 현실보다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많다.
날카로운 통찰이지만 하라리의 이론은 커다란 약점을 안고 있다. 하라리가 부르는 픽션은 픽션이 아니라 현실인 경우가 더 많다. 예컨대 화폐가 교환가치를 발휘하는 까닭은 국가 권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무정부 상태가 닥치면 화폐는 순식간에 가치를 잃고 만다. 마찬가지로 국가 권력은 픽션이 아니라 현실이다. 전시 징집당한 개개인은 공동체의 압박과 국가 폭력에 포박당한 상태로 전쟁터로 끌려간다. 참혹한 전쟁의 포화 앞에선 어떤 상상이 끼어들 틈도 없다. 인간을 죽음에 몰아넣는 전쟁은 가상의 픽션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이다.
또한 인류사의 전 과정을 종적 연대와 협력의 결과로만 볼 순 없다. 역으로 인류의 문명사는 지속적인 투쟁과 경쟁, 갈등과 전쟁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협력이 아니라 투쟁이 인류 문명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일 수 있다. 인류사에 나타나는 대규모 협업은 대개 공동의 위기나 갈등을 풀기 위한 최후의 해법인 경우가 많았다. 인류사는 투쟁과 약탈, 갈등과 침략, 보복과 재보복의 연속이었다. 전쟁의 악순환을 빼고선 인류의 문명사를 설명할 길 없다. 대규모 협력보단 집체적 갈등에 주목해야만 인류사의 수수께끼가 풀릴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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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계 모든 생명체는 생존 본능을 갖는다. 코끼리, 사자, 다람쥐, 바퀴벌레, 심지어 숙주에 기생하는 바이러스까지도 최후의 순간까지 안 죽기 위해 발버둥 친다. 동물뿐 아니라 식물까지도 살아남기 위해 분투한다. 푸르디푸른 숲을 멀리서 보면 평화롭기 그지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모든 나무는 햇빛을 받기 위해 격렬하게 싸워야만 한다. 밀림 속 나무들이 하늘 향해 쭉쭉 뻗는 이유는 햇빛을 받기 위해 주변의 나무들을 물리치고 살아남기 위함이다. 주변 나무 그늘에 가려 빛을 받지 못한 식물은 생장을 멈추고 이내 시들어 거름이 될 뿐이다.
생존 본능은 필연적으로 생존 경쟁을 일으킨다. 무정한 자연계에서 살아 꿈틀대는 개체들 사이의 생존 경쟁은 흔히 죽느냐, 죽이느냐의 다툼으로 번지기 일쑤다.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는 점에서 인간 역시 다른 어떤 종과도 별로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싸움은 다른 어떤 종에서도 볼 수 없는 집단적 폭력성과 일탈적 잔혹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침팬지나 늑대도 패싸움을 벌이고, 개미 군단도 몇 시간 내에 수천 마리를 죽이는 영토 전쟁을 일으키지만, 인간의 전쟁에 비하면 그 살상 규모란 미약하기 그지없다.
◇ 집단적 폭력성과 일탈적 잔혹성
역사는 인간 투쟁의 폭력성과 잔혹성을 증명한다. 지난 수십만 년 지구인들이 제작해 온 살상 무기를 돌아보면 그 점을 대번에 간파할 수 있다. 인류가 사용한 최초의 무기는 날카로운 돌멩이나 뾰쪽한 나뭇가지였겠지만, 신석기 시대에는 돌창, 돌도끼, 활과 화살 등이 제작되었고, 청동기 시대에는 청동제 칼과 창은 물론 전차가 생겨났으며, 철기 시대에는 다양한 철제 무기와 성곽을 부수는 파성퇴(破城槌, battering ram)와 투석기(catapult)가 제작됐다. 13세기 화약 무기가 개발된 후부터 전쟁에서 발생하는 살상 규모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15세기 이후 성곽을 포위해서 봉쇄하는 공성전(攻城戰)에선 큰 규모의 포병대가 동원됐다. 1500년 이후 화승총(matchlock muskets)을 비롯한 화승식 발화장치가 일반화되면서 대포로 중무장한 해군의 함대가 바다를 주름잡기 시작했다. 급기야 산업화 이후엔 대량 파괴 무기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1차대전과 2차대전에서 사망한 인구는 7600만명에서 1억명을 헤아린다. 현재도 인류는 더 파괴적인 무기 체계를 갖추고서 제3차 세계 대전을 가까스로 억지하고 있을 뿐이다.
삶의 의지를 갖는 모든 생명체는 생존 경쟁에 내몰린다. 생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공격성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육식 동물은 먹이를 사냥해서 잡아먹지 않고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수백만 년 지구 위에서 사냥꾼으로 생존해 온 인류가 공격성을 갖고 있다는 점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그 공격성이 도저히 설명 불가능한 폭력성과 잔혹성을 보인다는 점이다.
자연계 거의 모든 생명체의 공격성은 적절한 한계를 보인다. 먹이사슬 꼭대기의 포식자라 해도 배를 충분히 채우면 더는 사냥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오직 인간의 투쟁은 생존의 필요를 훨씬 더 넘어서는가? 왜 인간은 자연계 어떤 종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과도한 폭력성과 일탈적 잔혹성을 보이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선 그 누구도 문명사의 전개 과정을 설명할 길이 없다. 장구한 세월 지구 위에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지혜로운 인간)는 호모 푸그난스(Homo Pugnans, 투쟁하는 인간)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역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