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는 말 그대로 가르치고 기르는 공간이다. 거룩한 학교 현장이 사람을 해치는 공간이 됐으니 실로 아연하다.
요즘 학부모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학교를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없는 이런 현실 때문이다. 성스러운 교육이 이뤄지는 배움터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돌봄 사각지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학교는 되레 위험한 공간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학교 현장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희대의 사건·사고에도 미봉적 조치만 내놓는 대전시교육청의 무사안일이 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입에 올리기 민망한 사건이 발생하면 대전시교육청은 신속한 진실규명과 대책마련보다는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며 비판을 모면하기에만 급급했다.
모든 사건 사고가 그러하듯 최상책은 '예방'이다. 짚어보면 가해 교사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장기간 병가와 조퇴를 반복했다. 심지어 동료 교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등 정상적인 교육활동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전시교육청은 질환교원심의위원회를 통해 부적격 교원을 학생들로부터 분리하는 등 선제적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음에도, 아무런 개입 없이 방치했다. 이는 엄연한 직무유기다. 교육당국의 불감이 학생 안전을 얼마나 소홀히 여기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하물며 설동호 대전시교육감은 사건 발생 후 지금까지 단 한 번의 공식적인 사과조차 없다. 학생 안전을 책임질 교육 수장의 묵비(默秘)는 유족과 시민들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능란한 교육감의 사과 없는 변명과 회피는 대전 교육계 신뢰를 더욱 훼손하고 있다는 게 일각의 시각이다. 게다가 대전시교육청의 '사후약방문'식 위로와 대책은 진정성 없는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비쳐 식상하다.
물론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를 교육청이 사전에 예측하고 예방하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대전시교육청은 교사들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지원을 강화하고, 학생들 안전을 최우선 하는 매뉴얼을 구축해야 옳다. 그것이 고(故) 김하늘 양의 죽음에 부응하는 일이고 또한 예의다.
차제에 학교 내 문제 발생 시 교사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관행을 버리고, 교육청이 솔선해 문제를 해결하고 지원해야 한다.
되돌아보면 대전지역 초·중·고등학교에서 입에 담기 거북한 추문으로 교육계를 경악게 한 일은 부지기수였다. 이미 지난해 상반기에 다수의 사제 간 성 비위가 드러나면서 강도 높은 재발 방지책이 요구된 바 있다. 그러나 교육청의 부실한 후속조치로 결국 한 초등교사가 미성년자의제강간 혐의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렇듯 대전교육은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안전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청의 자성이 필요하다. 대전시교육청의 인사 농단, 학교 시설물 발주 의혹, 3포와 신3포 '린다 5' 등 염불보다 잿밥에 매달린 결과가 이처럼 해괴한 사건을 낳았다.
이제 3선(選) 말년을 맞은 설 교육감의 시간은 많지 않다. 명예로운 마무리를 위해 학부모, 교사, 학생의 목소리를 반영한 대전 교육의 대계(大計)를 마련하길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