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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식의 질서경제학] 위기의 독일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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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9. 2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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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식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명예교수)
독일 경제가 성장 정체와 경쟁력 저하로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코로나 팬데믹에서 벗어나 대부분 국가가 높은 성장을 기록했던 2023년, 선진국 중 유일하게 독일만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IMF의 금년 독일의 경제성장률 예상치는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0.1%이다. 독일경제연구소(ifo) 기업환경지수는 지난 4개월 연속 하락세이고, 기업 파산율은 지난 10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독일에 대해 '경제위기', '다시 유럽의 병자가 되었다'라는 평가가 경제전문가로부터 나오고 있다. 독일 하벡 경제장관은 '현재 경제상황이 매우 나쁘다', 린드너 재무장관은 '독일 경제가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라며 독일 경제가 심각한 상태에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독일 경제의 부진은 단기에 해결될 수 없는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요인들에 기인한다. 그중 하나가 에너지 문제다. 독일은 지난 10여 년 동안 원전을 폐기하고 이를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대체하는 에너지전환 정책의 시행과 더불어 저렴한 러시아 가스를 수입하여 에너지 수요를 충당해 왔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가스 공급이 끊기게 되었고, 원전 가동 중단에 따라 발전원가가 훨씬 높은 에너지원으로 전력을 생산하게 되었다. 독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G7 국가 평균의 2.7배로 치솟았고, 이는 기업의 제조원가 상승, 수출경쟁력 저하를 야기했다. 전력 소비가 많은 화학, 철강, 기계 등 독일 대표산업 기업은 비싼 전기 가격을 피해 해외로 공장을 옮기고 있다.

중국 경제의 부진도 주요 요인이다.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출국인 독일의 경제는 해외의존도가 매우 높다. 독일은 중국과의 무역이 크게 확대되어, 최근 7년 중국이 독일의 최대 무역상대국이었다. 그런데 지난 수년 중국 경기가 위축됨에 따라 독일 경제의 높은 중국의존도는 독일의 수출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심대한 타격을 주게 되었다.

그런데 독일의 경제위기는 이러한 외부 요인보다 독일 경제 내부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하는 바가 훨씬 크다. 먼저 독일의 산업구조 관련 문제이다. 자동차, 화학, 기계 등 제조업은 지난 세기 독일 성장의 견인차였고, 경쟁력의 상징인 '메이드 인 저머니'를 대표했다. 그렇지만 제조업 중심의 독일 경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산업의 다각화 및 디지털 경제로 재편되는 새로운 환경에 편승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 결과 백년도 더 전 카이저 시절 프로이센의 중심산업이 여전히 현재 독일의 중심산업이며, 스스로 '디지털 후진국'이라고 자조할 정도로 디지털 경제의 신사업 영역에서는 부진하다. 세계 100대 ICT 기업 중 독일 기업은 SAP가 유일하고, 독일 전자상거래시장에서 독일 플랫폼은 미미하며 아마존이 압도적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노동력 부족 문제도 독일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이다. 독일 정부는 노동참여 증대와 외국인 이민 확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고학력, 고숙련 인력의 경우 오히려 인력의 국내 유입보다 해외 유출이 더 많았다. OECD 통계에서 독일인의 해외이민 비율은 세계 3위로 매우 높다. 더 큰 문제는 독일을 떠나는 사람 넷 중 셋이 대졸 이상의 고급인력이라는 점이다. 숙련인력 부족은 특히 독일 경제의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고 있다.

독일 정부와 기업의 투자부진도 경제침체의 주요 원인이다. 독일 정부는 국가부채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엄격하게 관리해 왔으며, 이에 따라 정부지출을 보수적으로 운영해 왔다. 그 결과 독일의 GDP 대비 정부투자는 OECD 국가 최저수준이다. 민간 부문에서도 투자가 부진했다. 독일 기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투자보다 저축을, 국내투자보다 해외투자를 택했다. 1990년 GDP의 15.8%에 달했던 기업투자는 2020년 12.3%로 감소했고, 반면 해외투자는 2020년 1340억 유로에서 2022년 1890억 유로로 대폭 증가했다.

행정 당국의 까다로운 요구, 복잡하고 더딘 행정 절차, 거미줄 규제 등의 고질적 관료주의가 독일 경제의 발목을 잡아왔다. 독일의 관료주의는 과거 기업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경영 환경을 조성해 준 측면도 있지만, 현재의 기업환경에서는 비효율을 초래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기업 발목을 잡고, 혁신 기업의 탄생을 어렵게 하고 있다.

세계은행의 2020년 기업환경평가 창업의 용이성에서 독일은 190개국 중 125위에 위치했다. 영업 허가를 받는 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30일이 걸리지 않지만, 독일에선 120일 이상 걸린다. 독일 정부는 관료주의로 허비되는 비용을 연간 650억 유로(약 100조원)로 추산하고, 관료주의 철폐를 행정개혁의 핵심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독일 경제의 문제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독일 경제위기의 원인인 에너지 이슈, 높은 중국의존도, 산업구조 개혁 부진, 고령화와 생산가능 인구 감소, 고급인력 해외 유출, 국내투자 저조와 해외투자 증대, 과도한 행정절차와 규제 등은 바로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독일의 문제는 우리에게 수출시장 다변화, 산업구조 다각화 및 첨단산업 육성, 노동참여 제고 및 외국인력 적극적 유치, 국내 투자환경 개선, 행정 간소화 및 규제 철폐라는 답을 알려주고 있다.

김강식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명예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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