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의 '폭탄 돌리기'에 더해 피고인의 책임으로 6개월 내 끝내야 했을 선거법 1심 판결이 2년 이상 지연
피고인이 떳떳하다면 오히려 재판을 더 많이, 빨리 열자고 요구했어야
이재명 "내가 이 나라의 적인가? 나는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닌가?"
'대선 전 결론'을 사법부에 요청하고 결과 수용을 서약하는게 정치인을 떠나 이 나라 국민인 자의 기본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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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정치 탄압을 하려는 윤석열 대통령의 뜻에 따라 검찰이 증거를 조작해 부당하게 기소했다는 주장이다. 설득력을 얻기 위해 자신의 처지를 김구·조봉암·김대중과 동렬에 놓았다. 둘째, 그러므로 판결권을 가진 법원이 진실에 따라서 합리적으로 판단해 달라는 호소다. 절박함을 표현하기 위해 '법원은 인권과 사법의 최후 보루'라며 믿음을 보탰다.
정리하면, 무자비한 '정치검찰'이 야당 대표 탄압을 목적으로 2년 징역형을 구형했으므로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법원이 바로잡아 달라는 최후진술이었다. 그 논리대로면 자신을 수사했고 공소 유지를 하는 검사들의 옷을 벗기겠다며 탄핵 발의를 한 일이 이해된다. 수사권을 남용하는 검찰청을 아예 없애버리고 공소청을 두겠다는 위협도 마찬가지다. 2년 징역형 구형이 나오는 순간 "검찰이 이재명을 사냥했다"라는 민주당의 반응이 있었는데, 호흡이 척척 맞는다. 검찰은 "피고인의 신분과 정치적 상황 같은 건 제쳐놓고 죄질만 봐야 한다"라고 했지만, 그 논리대로면 헛소리다. 피고인이 정권과 맞서는 야당 대표 신분의 이재명이어서 대법원 양형기준의 최고치를 구형한 게 된다.
그 논리를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렇다 치자. 그래야 국민의 집단 피로감이 극에 달한 '이재명 사법위기'의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다. 일단 '악마화한 검찰'을 전제로 깔면 '최후의 보루 법원'을 향한 이 대표의 신뢰는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진 그렇지 못했다.
6개월 만에 끝내야 했을 선거법 1심 판결이 2년 이상 끌어온 건 재판부의 '폭탄 돌리기' 탓이지만 피고인의 책임도 크다. 걸핏하면 국회 일정을 내세워 재판에 불출석했고, 정치 단식 기간에도 심리가 진행되지 못했다. 피고인이 떳떳하고 법원에 대해 강한 신뢰가 있었다면 오히려 재판을 더 많이, 빨리 열자고 요구했어야 한다.
이 대표는 그러지 않았다. 되레 당 대표 방어에 나선 측근이 "재판에 민주적 통제를 가해야 한다"라며 삼권분립 정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최고위원들이 앞다퉈 "1심 유죄가 나오면 판사들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협박도 했다. 최후진술을 통해 법원에 대한 신뢰감을 표현한 건 '무죄 판결' 전제의 조건부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만일 유죄가 나오면 판사 탄핵을 넘어 법원 해체론까지 제기할 기세가 실제로 엿보인다.
이 대표가 직면한 7개 사건, 11개 혐의, 4건의 재판 중 첫 구형이 나온 건 상당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말만 무성하던 '이재명 사법위기'의 실체가 확인됐다. 더구나 양형기준 최고형을 때릴 만큼 검찰이 파악한 범죄의 중대성이 심각하다. 이건 시작이다. 곧 위증교사 사건 구형이 이어지고 11월에 두 개의 1심 선고가 나온다. 대장동 등 사건과 대북송금 혐의 재판도 계속 열린다. 검찰의 시간이 종료되고 법원의 시간이 시작됐다. 이 시점에 이 대표가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리는 모습도 보인다. 최후진술에서 "(재판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서 저로서도 엄청나게 불안하다"라고 했다.
그런데 불안한 건 국민이 더 그렇다. 물론 불안한 이유는 다르다. 야당 대표이자 유력한 대권주자의 사법 위기로 정상적인 국회 활동이 마비된 지 이미 오래됐다. 통상적이라면 사법 절차가 마무리됐을 때 이 불안한 상황은 종료된다.
그런데 지금은 칼자루가 법원에 넘어가서 끝이 다가올수록 더 불안해진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법원 판결을 불신하고 승복하지 않을 게 뻔하다고 여기는 까닭이다.
때맞춰 전직 대통령(문재인) 일가를 향한 대대적 수사와 제2야당 대표(조국)의 구속이 예약된 대법원 확정판결 일정이 겹쳐 더 불안하다. 당장 대통령 탄핵정국에 접어들면서 정치적 변고가 생길 것만 같다.
이 대표의 법정 최후진술 랩 가사엔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었다. 구형을 때린 7명의 검사를 번갈아 쳐다보며 "내가 이 나라의 적인가? 나는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닌가?"라고 항변했다. 그럴 리가. 불과 2년여 전에 국민 절반 가까이(47.83%)가 대통령감이라고 표를 준 인물이다. 최근 실시되는 차기 대통령감 여론조사에서도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나라의 적이 아닐뿐더러 최우수 국민이다. 적어도 현재로선 그렇다.
다만 이 지위를 유지하려면 할 일이 하나 있다.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믿고 따라야 한다. 불리한 판결이 나왔다고 검찰에 이어 사법 체계를 몽땅 부정하고 해체하려 한다면 나라의 적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올바른 길은 법원을 향해 신속한 재판을 스스로 요구하는 결기다.
다음 대선 때까지 4건의 재판 중 하나라도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지 않으면 큰 혼란이 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피고인으로서, 유력 차기 대권주자로서 '대선 전 결론'을 사법부에 요청하고 결과 수용을 서약하는 게 정치인을 떠나 이 나라 국민인 자의 도리다.
송국건 본지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