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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 사회적 타살을 막기 위한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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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영 기자

승인 : 2025. 12. 1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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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의 정책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행보는 단연 '산재와의 전쟁'이었습니다. 담당 장관이 직을 걸고 막겠다고 공언하면서, 산재 사고를 낸 기업들은 바짝 몸을 낮췄습니다. 사고 현장은 물론 회사 전체 영업장까지 작업을 멈췄고, 일부 최고경영자와 임원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산재 공화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평가까지 받아왔습니다.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망사고 소식이 이어졌고, "새 정부가 출범했으니 이제 산재·사망사고도 많이 줄었겠지"라고 기대하신 분들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노동자 사망사고는 줄지 않았고, 올해 9월까지 사업주의 안전조치 의무 미이행으로 사망한 근로자는 오히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명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장에서의 증가가 두드러집니다. '2025년 3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3분기까지 사고 사망자는 457명으로 전년 대비 14명(3.2%) 증가했습니다. 사고 건수 역시 440건으로 29건(7.1%) 늘었습니다. 사업장 규모별로 보면 차이가 더 명확합니다. 50인 이상 사업장은 사망자가 12명 줄어든 182명이었지만, 50인 미만 사업장은 전년 대비 26명 늘어난 275명으로 집계됐습니다. 5인 미만으로 좁혀보면 증가 폭은 더 커집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정부 정책이 효과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책이 현장에 스며들고 시스템이 자리 잡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장기적으로 개선될 여지는 충분합니다. 다만 문제는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장입니다.

이들 사업장은 구조적으로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해 중대재해에 더 취약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안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보다 '운'에 기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정부 지원으로 안전설비를 도입하더라도 여전히 사고를 '재수 없으면 발생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또한 중소기업은 예방을 위해 큰 비용을 투입하기 어려운 현실적 한계가 있습니다. 경기 침체와 관세 부담 등 여러 압박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위험을 외면한 채 운영을 이어갈 수는 없습니다.

산재 감소는 장비 몇 개 설치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핵심은 안전관리 시스템 자체를 개선하는 것입니다. 영세사업장의 관리 역량을 높이고, 실질적인 재해 예방 체계를 구축하도록 돕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중소기업의 규모와 작업 환경에 맞춘 맞춤형 안전관리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확산·지도하는 방식이야말로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일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사회적·정치적 통제를 가진 집단이 노동자를 부자연스러운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면 이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회적 타살을 막기 위해서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의 안전관리 시스템 도입이 더욱 절실합니다. 예산 문제가 있다면 장비 지원뿐 아니라 시스템 구축과 전파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이 진정한 도움이라는 것을요.
장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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