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대법원장 인사말 후 이석 불허
與의원들 관행깨고 '선거법' 판결 추궁
행정처장 "87년이후 일문일답 한적없어"
법조계 "견제·균형깨진 反헌법적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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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헌법의 기본 뼈대를 세운 '87년 헌법 체제' 이후 대법원장이 국회에 나와 일문일답을 한 적이 없음에도 관행을 깨고 조 대법원장을 향해 질문공세를 펼친 것이다.
법조계에선 국회가 헌법이 보장하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삼권분립을 무너뜨렸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 법사위 국감장에 출석해 인사말을 한 뒤 이석(국감장을 떠나는 것)하려 했으나 국회 법사위원장인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불허로 이석하지 못했다. 이후 추 위원장은 증인이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조 대법원장에 대한 질의응답을 강행했고 민주당 의원들의 일방적인 질의가 이어졌다.
질의 과정에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1987년 헌법이 성립되고 나서 대법원장이 나와 일문일답 한 적이 없다"며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독립투사, 정치가, 법전편찬위원장 등으로 여러 지위에서 건국 초기 혼란에 대해 말한 것이지 재판 사항에 대해 일문일답한 적이 없다"고 조 대법원장의 이석을 재차 요청했다. 그러나 추 위원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 대법원장은 민주당 의원들의 질의가 끝나서야 이석했다.
이날 민주당 의원들이 대법원장의 이석 관행을 깬 이유는 조 대법원장을 향한 질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지난 5월 공직선거법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을 '대선 개입'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날 이와 관련한 질의가 나왔다.
판결 유무죄의 당위성을 묻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재판 절차와 관련된 질의 시간을 이어갔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삼권분립을 제도적으로 보장한 '87년 헌법 체제'가 38년 만에 무너졌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87년 헌법 체제'는 1987년 개헌을 통해 만들어진 현행 헌법의 기틀을 만든 체제로, 이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이 확립됐다. 이 과정에서 각 기관의 견제와 균형을 제도적으로 보장한 삼권분립이 자리 잡게 됐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개인 또는 단체 자격으로 사법부 결정에 비판을 할 순 있겠지만, 공식적인 국감장에서 국회의원이 직을 이용해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며 "사실상 권한을 넘은 행위이며, 삼권분립이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의 이석을 막고 질의를 강행한 건 헌법에 반하는 행위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삼권분립은 상호 존중을 전제 내지는 대등성을 전제로 견제와 균형을 갖춘다. 지금 견제와 균형도 깨지고 대등성도 깨진 상황이 돼버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삼권분립과 사법권 독립은 국민 의사의 직접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에 명시돼 있는 것"이라며 "선출된 권력이라는 이야기는 결국 국민의 위임을 받은 권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위임된 권력이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헌법에 반하는 위헌적인 행위를 해도 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