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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센터는 프랑스 파리에 자리 잡은 유럽 최고의 현대미술관이자 문화복합공간이다. 1977년 마르셀 뒤샹의 회고전으로 문을 열었다. 20세기 초부터 최근까지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장하고 있어 동시대 미술 전문가는 물론 파리를 찾는 여행객에겐 필수 방문 장소로 꼽히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 색채화가로 알려진 클로드 비알라(Claude Viallat, b.1936)의 작품 '무제'(1966)는 퐁퓌두센터의 소장품 중 하나다. 클로드 비알라는 캔버스의 프레임을 제거함으로써 기존 회화 매체에 대한 틀을 깬 화가로 유명하다. 그는 20세기 후반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프랑스의 '쉬포르/쉬르파스(Supports/ Surfaces)' 그룹의 중심적 화가로서, 캔버스 천 대신 기성의 산업용 방수포, 커튼, 양탄자 등 다양한 직물에 패턴을 반복한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시각 예술 작품의 특정 주제와 정의, 개념 대신에 창조적 행위 자체와 예술의 존재론적 지위를 탐구하고 질문하는 그의 작업은 여러 작업적 특징 가운데 패턴의 '반복'을 주요하게 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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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반복'이라는 단순한 원리에 기초한 이 소박하고 보편적인 테크닉은 비알라가 1966년에 발견한 우연한 형태와 함께 지속적인 작업 과정으로 자리 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추상회화가 막다른 벽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던 비알라는 프랑스 남부의 석공들이 부엌 벽을 칠할 때 스펀지를 반복해서 찍어 꽃 모양을 만드는 방식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작가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중해 국가에서 부엌을 '하얗게 칠하는' 데 사용되는 특정 기법이 제게 적합해 보였습니다. 푸른 석회 한 통에 스펀지를 담갔다가 흰 벽에 체계적으로 바르는 것이었죠. 팽팽하게 펴지거나 프라이머를 바르지 않은 캔버스에 어떤 형태로든 찍어낼 수 있는 이 각인 기법은 매우 생산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단순한 패턴의 반복은 그간 회화 고유의 '그린다'는 행위 대신 '제작한다'는 행위로의 대체를 의미했던 것일까. 그의 이러한 회화 매체에 대한 질문은 회화적 행위의 구성 요소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프랑스의 미술사학자 나딘 푸이용(Nadine Pouillon)에 의하면, 비알라는 프레임을 제거하고 자유로운 캔버스를 선택하여 그 유동성을 활용했으며, 다양한 지지체에 염색과 같은 새로운 채색 기법을 실험했다. 여기에서는 두꺼운 물감이 필요 없도록 염색한 후 접어서 쉽게 운반하거나 보관할 수 있는 유연한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도 지속적으로 탐구했다. 제작 과정에서 생긴 주름 자국은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러고 보면 비알라의 조형어법인 패턴의 '반복'은 한국단색화가들의 특징적 작업 방식인 '반복'을 떠올리게 한다. 박서보(1931~2023)의 '묘법' 연작이나 김창렬(1929~2021)의 '물방울' 연작 등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반복'이라는 방법적 활용은 신체의 수행성이라는 측면에선 두 작가들의 공통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비알라와 동양적 무위(無爲) 개념을 말하는 한국 단색화 화가들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반복'이라는 용어를 통해 그 어떤 것도 세상에 동일한 것은 없구나 싶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 속 '루틴'이라는 의도된 반복도 오늘과 내일 같을 수는 없다.
/큐레이터·한빛교육문화재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