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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주가에 너무 많은 것 거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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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심의실

승인 : 2025. 08. 17. 17:52

-구체적 주가 국정목표로 삼은 건 처음
-정치적 정당성과도 직결돼 '양날의 칼'
-제도 개선으론 한계… 증시 이미 피로감
-혁신·성장 정책 없으면 뒷걸음질 우려

배병우
배병우 논설위원
이재명 정부가 주가 상승에 쏟는 관심은 유별나고 각별하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경제·산업 분야 첫 번째 공약이 '주가 지수 5000 시대 개막'이다. 이 공약은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가 지난 13일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그대로 담겼다. 그것도 그냥 국정과제가 아니다. 부처별 칸막이를 넘어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는 12대 중점 전략과제 중 하나가 '코스피 5000 시대 도약'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되게 법을 고칠 목적으로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도 만들었다. 주가 상승에 '올인'했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역대 어느 정부도 구체적인 주가 지수를 국정과제나 목표로 내걸지 않았다. 이번 정부의 주가 올인은 '유별난'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해 코스피가 제값을 받도록 하겠다는 정책 방향은 바람직하다.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 과도한 '부동산 자산 쏠림'을 바로잡아 돈의 흐름이 금융자산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거시경제 차원에서도 매우 필요하다.

하지만 주가 지수를 국정 목표로 삼는 데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주가가 정부의 경제적 업적이나 성취를 그대로 반영하는 지표이냐는 것이다. 대통령의 취임 무렵 주가 지수가 2000이었다가 끝날 때 2500이 됐다고 해서 그가 민생이나 경제에서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임기 동안 일자리 사정이 악화하고 성장률도 낮았지만 재정을 풀어 돈의 힘으로 주가가 올랐을 수 있다. 무리한 주가 부양의 후유증을 다음 정부나 후세대로 떠넘겼을 수도 있다. 정부의 민생·경제 성적을 측정하는 지표로는 경제성장률, 실질임금 증가율, 청년고용률 등이 더 대표성이 있을 것이다.

주가 지수에 따라 정부에 대한 평가가 급변동하는 위험도 있다.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이 주가와 직접 연결되는 것이다. 코스피가 지금처럼 오를 때야 희희낙락이지만 급락하면 정치적 위험으로 돌변한다. 코스피 5000을 기대하며 증시에 돈을 넣었던 투자자들의 실망은 금세 정부에 대한 분노로 바뀔 것이다.

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국가 정책이 휘둘리는 문제도 있다. 주식 양도차익에 과세하는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으로 낮추기로 하자 국회 반대청원이 14만명을 넘었다. 문제는 개미에게 유리한 정책이 항상 국가 전체에 좋은 정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권이 이러한 정치적 위험과 정책 위험을 감지하면서도 '코스피 5000'을 못 박은 것은 목표 달성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자신감은 주로 자본시장 개혁 효과에 기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소액주주의 권리를 찾아주고 주가 조작을 엄벌하는 등 자본시장의 규율을 세우는 장치들이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실행하면 '서학 개미'가 국내로 환류하고 외국인 투자도 몰리면서 코스피 5000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어쩌면 단순한 셈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주가를 결정하는 것은 기업실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주가=주당순이익(EPS)×배수(멀티플)'라는 적정주가 계산공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주가수익비율(PER) 등으로 대표되는 배수는 시장의 기대와 투자심리 등을 나타내는 잣대로 시장을 지배하는 제도나 유동성 등 환경을 반영한다. EPS는 기업이 한 주당 벌어들이는 이익을 가리키며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를 나타낸다. 정부의 상법 개정 등 제도 개선은 주가 계산공식의 배수를 증가시킨 요인이다. 하지만 제도 개선에 따른 배수 증가 효과는 한계가 있고, 이미 증시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앞으로 주가는 EPS로 대표되는 기업실적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정부의 노력이 보이지 않거나 오히려 역행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미 관세협상 등 통상환경 급변으로 주요 제조기업의 순익은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국내 투자 공동화, 일자리 감소 등의 후폭풍이 예상된다. 여기다 노란봉투법 제정과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움직임은 기업의 투자 의욕을 더 위축시키고 해외로의 공장 이전을 재촉할 수 있다.

국내 증시 활성화가 바람직한 정책 방향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규제 혁파를 통한 기업 투자 의욕 제고, 부실 산업 구조조정, 혁신을 촉진하는 기업정책이 병행되지 않고는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이미 피로감이 엿보이는 코스피의 도약을 위해서도 여당과 정부의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
논설심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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