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게멋진 프로덕션의 연극 ‘비평가’로 올해 첫 무대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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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캣'이라는 이름은 19세기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 자리했던 전설적 카바레 '르 샤 누아르(Le Chat Noir)'에서 따왔다. 시인과 예술가들이 밤마다 모여 서로의 창작을 나누고 토론했던 그 공간은, 당대 예술운동의 구심점이자 도시문화의 실험장이었다. 예술공간 혜화는 이 상징적 공간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계승하여, '검은 고양이들이 밤마다 출몰하는 카바레'를 하나의 창작 플랫폼으로 구현했다.
이번 시즌 '블랙캣'은 2025년 6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약 7개월간 총 8개의 공연을 선보인다. 공동기획 공연 7편과 자체기획 공연 1편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에는 신진예술가부터 창단 10년 이상의 중견 극단까지, 세대와 결을 넘나드는 다양한 예술단체가 함께한다. '협동조합 아트컴퍼니 드레'가 운영하는 이 공간은 민간이 주도하는 창작지원 모델의 대표 사례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창작공간)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연속 선정되어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2025년 첫 무대를 여는 작품은 되게멋진 프로덕션의 '비평가'. 제목에서부터 날카롭고 불편한 질문을 예고하는 이 작품은 연극 창작자와 평론가 사이의 오랜 긴장과 대립을 소재로, 예술과 권력, 언어와 폭력의 경계를 교차한다.
극은 신작의 성공적인 초연 직후, 극작가 스카르파가 10년 전 자신을 혹평했던 평론가 볼로디아의 집을 찾아오며 시작된다. 고립된 지식인의 형상을 한 볼로디아는 한때 예리한 통찰력으로 예술계를 휘어잡던 존재였지만, 이제는 세상과 단절된 채 자신의 책 속에 파묻혀 살아간다. 그의 집은 곧 감옥이자, 해석과 해석되지 않음을 둘러싼 권력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두 인물은 대화를 이어가며 점차 연극 안의 또 다른 연극, 즉 극중극으로 옮겨간다. 이 과정에서 볼로디아는 권투 선수 타우베스, 스카르파는 에릭으로 분하며, 연극 무대는 권투장의 링으로 전환된다. 이 극중극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라, 창작자와 비평가가 예술을 매개로 벌이는 실제적 '대결'의 무대다. 언어는 주먹처럼 날아들고, 침묵은 오히려 강력한 반격이 된다.
되게멋진 프로덕션의 연극 <비평가>는 연극 창작자와 평론가 사이의 팽팽한 관계를 무대 위로 끌어올리며, 예술을 둘러싼 권위와 해석의 주체에 대해 성찰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인물 간 갈등을 넘어, 창작과 비평 사이의 긴장 구조를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특히 권투장의 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극중극 장면은 말과 말, 침묵과 침묵이 부딪히는 독특한 장치로 기능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예술의 자율성과 비평의 책임 사이에 놓인 균형 지점을 자연스럽게 되묻게 한다.
예술공간 혜화는 '비평가'를 시작으로 7월에는 에게의 '삼애: the author's body', 8월에는 자체기획작 '현관문을 열어라' 등 다양한 작품을 연달아 선보인다. 10월에는 '심야극장'이라는 이름의 특별 프로그램도 예정돼 있다. 이는 밤새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 공연하고 교류하는 포맷으로, 예술공간 혜화가 추구하는 '열린 창작공간'의 이상을 더욱 구체화하는 시도가 될 전망이다.
'블랙캣'은 단순한 공연 시리즈를 넘어, 예술 생태계의 다양성과 자생력을 시험하는 무대다. 특히 상업성과 무관하게 실험적인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극단들이 중심에 선다는 점에서, 현장 예술인들에게는 귀중한 창작의 장으로, 관객에게는 동시대 연극의 경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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