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조성준의 와이드엔터] 파리의 밤 달군 셀린 디옹, 꿈 못이룬 태극전사들 희망과 위로 얻길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biz.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802010001281

글자크기

닫기

조성준 기자

승인 : 2024. 08. 12. 10:10

연이은 악재 딛고 일어나 올림픽 개막식 공연으로 가슴 뭉클한 무대 선사
셀린 디옹
캐나다 출신 '디바' 셀린 디옹(오른쪽)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열린 2024 파리올림픽 개회식에서 에펠탑 특설무대에 올라 '사랑의 찬가'를 열창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2024 파리올림픽이 12일 새벽에 열린 폐회식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와 2020 도쿄 대회처럼 이번 올림픽도 세월의 흐름으로 인한 세대 간의 격차 혹은 인식 변화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시상대에 오르면 모든 한이 풀렸다는듯이 엉엉 울기 바빴고 패한 뒤 자책하며 눈치 보기 급급했던 이전과 달리, 경기가 끝난 후에는 승패와 상관없이 활짝 웃는 얼굴로 모든 순간을 즐기면서도 거침없이 할 말은 하고야 마는 MZ세대 메달리스트들의 모습이 전체적으로 보기 좋았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 선수들의 선전은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안겨줬다. 이 중 사격의 오예진·반효진 선수가 금메달 확정 후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의 총잡이에서 화사하게 미소짓는 10대 소녀로 순식간에 바뀌는 과정은 중국 전통 공연예술인 '변검'을 보는 것마냥 신기하면서도 딸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워, 볼 때마다 매번 탄성과 함께 '아빠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또 3년전 도쿄에서 8강에 그쳤던 배드민턴 여자 단식의 안세영이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딛고 '셔틀콕 여제'로 우뚝 선 뒤 특유의 포효 세리머니를 펼치던 순간은 전율이 일 만큼 짜릿했다.

한편 '디바' 셀린 디옹이 개회식의 마지막을 '사랑의 찬가'로 장식했을 때도 명장면으로 오래 남을 듯 싶다. 경기에 출전한 선수는 아니지만 배우자와 혈육의 연이은 사망 및 희귀병 투병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무대에 오른 모습이 올림픽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한 편의 인간 드라마로 진하게 와 닿았기 때문이다.
디옹은 2016년 1월 남편 르네 앙젤릴을 암으로 떠나보내고, 이틀 후 오빠 대니얼 역시 암으로 잃는 아픔을 내리 겪었다. 매니저이기도 했던 앙젤릴은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부어 디옹을 '디바'로 키워낸 주역이었고, 앞서 대니얼은 훗날 매부가 될 앙젤릴에게 데뷔 전 여동생의 노래가 담긴 데모 테이프를 보냈지만 연락이 없자 "노래를 듣지 않은 게 분명하다. 들었으면 전화를 안 할 리가 없다"는 내용의 음성 메모를 남겨 디옹의 데뷔를 성사시킨 당사자였다.

가수 생활을 중단하면서까지 남편과 오빠의 곁을 지켰던 디옹에게 불행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이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활동을 쉬는 줄로만 알려졌던 2022년, 희귀 신경 질환인 '전신 근육 강직인간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다.

같은 해 디옹은 SNS에 올린 영상을 통해 "이 질환으로 온몸의 근육이 뻣뻣해지고, 외부 자극이 가해지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경련에 시달려 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 보행 등 일상생활마저 어려워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올해 5월 공개한 다큐멘터리 '아이 엠 셀린 디옹'에서는 치료중 아픔을 참지 못해 비명을 지르는 모습 등을 여과없이 보여줘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런데 만약 그가 이처럼 투병 생활의 고통을 호소하는 것에서 그쳤다면 파리올림픽 개회식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공연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멈추지 않겠다. 걸을 수 없다면 기어서라도 가겠다"라며 무대 복귀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 디옹은 약속한대로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조금 수척해지긴 했지만 더욱 원숙해진 미모와 전성기와 비교해서도 전혀 달라진 게 없는 음색과 성량을 과시하며 멋지게 돌아왔다.

불의의 부상을 당했거나, 너무 긴장한 나머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복병에게 예상하지 못한 일격을 당해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우리 태극전사들이 있다면 멀리에서 찾을 것도 없다. 개회식으로 되돌아가 에펠탑을 등에 지고 꼿꼿하게 서 있는 무대위 디옹의 눈빛을 보며 4년 후 로스앤젤레스를 기약하길 바란다. 세상 그 어떤 고난도 두렵지 않다는 듯 결기를 내뿜는 두 눈에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용기와 재기의 의지를 얻을 것이다.
조성준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