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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페라 퍼포먼스 '태양과 바다'는 2017년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국립미술관에서 초연된 이후, 베니스, 노르웨이, 스위스, 독일, 덴마크,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 미술관 등에서 공연되었다. 지난 5월 향수 브랜드로 유명한 탬버린즈의 단독 초청으로 국내에서도 공연되어 2030 세대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은 바 있다.
실내의 인공 해변이 무대인 '태양과 바다'는 대본, 조명, 30톤의 모래와 해변 조성을 위한 세트, 24명의 배우, 음향(장비) 등이 필요한 스케일이 매우 큰 작품이다. 기존 오페라와는 달리 영웅이나 주인공이 특정되지 않고, '태양과 바다'가 있는 해안가 모래사장 위 평범한 휴양객들의 일상 속 대화와 서정적 아리아, 합창이 아름답지만 암울하게 어우러진다.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는 위층 객석보다 한두 층 낮게 설치되었고, 휴양객으로 분한 배우들은 무대 위를 덮은 모래 위 백사장을 걷기도 하고 의자나 수건에 기대거나 누워 쉬기도 하며 샐러드를 먹거나 온종일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뜨개질을 하기도 하고 플라스틱 플라잉 디스크 던지기 등 평범한 사람들의 오락과 여가, 지루함과 사랑, 일상의 걱정 등이 뒤섞인 해변의 하루를 보여준다. 이 익숙한 듯 평범한 배우들의 대화는 노래가 대신하지만, 우리네 일상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나에게 선크림을 건네줘, 다리 좀 발라야 해…/ 나중에 벗겨지고 갈라지고, 터질 테니까./ 건네줘, 내가 발라줄게…/ 안 그러면 너는 바닷가재처럼 빨개질 거야…/ 건네줘, 내가 발라줄게…"
"난 정말 느려질 수가 없어요,/ 동료들이 나를 무시할 거니까요./ 그들은 내가 의지가 없다고 말할 거예요./ 그러면 나는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느끼게 되죠./ 피로, 피로, 피로, 피로…/ 피로(exhaustion), 피로, 피로, 피로…"
보사노바 리듬으로 자외선 차단제를 노래하고, 피로에 지친 워커-홀릭 샐러리맨의 하소연이 들려온다.
"사람들은 1년 내내 계획을 세웠어. / 딱 열흘 동안의 휴가를 위해서 / 1년에 딱 한 번 가지./ 지금 땀 범벅이 되어 공항 대기실에 앉아 있어. / 황금빛 뜨거운 모래는 브로셔 속에만 존재해./ 화산은 예상치 못하게 폭발했어, (중략) 화산재가 공항에 도달하기 전에,/ 비행기는 검은 구름에 휩싸였어.…"
"나는 며칠 동안 머물렀어, 공포와 재가 사라질 때까지. 공항 마비가 끝날 때까지. 여기 있는 내 친구가 그의 형을 소개해 줬어: 우리 함께 있어!… 우리 함께 있어!…"
예상치 못한 화산 폭발과 그로 인한 공포를 하소연하고, 그 틈에서 싹튼 사랑을 노래한다. 과잉영양화(eutrophication) 탓에 대량증식한 녹조류(해조류)로 인해 숲처럼 변해버린 바다, 하얗게 변해가는 산호초, 해수면 상승, 쓰레기로 가득 찬 오염된 바다와 같은 인류가 직면한 실존적 위기를 노래로 들려준다. 노래와 별개로 해변에서 나누는 휴양객들의 대화는 이 같은 위기와 공포, 재앙에 무뎌진 우리의 모습을 재현한다. 익숙한 일상이 어느 순간 낯설게 다가온다면! 그 낯선 순간이 일상이 된다면! 여러 가지 문제를 시사하는 이 작품의 구상은 바이바 그라이니테가 리투아니아 숲속을 걷다가 얻은 통찰에서 비롯되었다.
바이바는 12월 겨울 어느 날 숲속을 산책하던 중 잘 자란 살구 버섯을 발견하게 되었다. 리투아니아의 기존 겨울 날씨에서는 결코 자랄 수 없는 살구 버섯을 발견한 바이바는 엄습하는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비정상적으로 변해버린 낯선 환경을 알아차린 바이바의 산책은 오페라 퍼포먼스 '태양과 바다'를 제작하게 하였고 불현듯 찾아올 낯선 일상이 평화와 위선을 가장한 채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큐레이터·한빛교육문화재단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