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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엽의 법과 경제] 축의금은 엿장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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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11. 06. 17:47

지인엽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정부 여당 인사들의 도덕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여당 출신 상임위원장인 최민희 의원이 국정감사 기간 중 피감기관으로부터 고액의 축의금을 받아 질타를 받고 있다. 또한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관료들도 토지거래허가제를 수도권으로 확대해 놓고 정작 자신들은 고가의 부동산을 보유한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이 커지고 있다. 결국,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논란 이후 보유 부동산을 처분했고, 이상경 국토교통부 차관은 사퇴했으며, 최 의원 역시 상임위원장직 사퇴 요구에 직면해 있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초래한 정치적·사회적 비용을 고스란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야당 역시 다르지 않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은 국정감사 기간 중 아들의 결혼식을 치르며, 피감기관인 해양경찰청장 명의의 화환 등을 받아 구설에 올랐다. 또한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반대로 최민희 의원의 딸 결혼식에 축의금 50만원을 전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 의원, 김 의원과 함께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 대상에 올랐다.

이들에 대한 비판은 주로 도덕적 흠결이나 축의금 액수 같은 구체적 사실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도, 특정 정권에만 국한된 일도 아니다. 이러한 문제의 본질은 공직자의 사적 이익과 공적 의무가 충돌하는 이해충돌이다. 이 본질을 간과하면, 비판 역시 객관성을 잃고 엿장수 마음처럼 들쭉날쭉해질 수밖에 없다.

경제학적으로 이해충돌은 주인-대리인 문제로 설명된다. 국민은 주인으로서 대리인인 공직자에게 권한을 위임한다. 그러나 공직자는 자신이 가진 지위와 정보의 우위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할 유인을 지니므로, 공직자의 권한이 언제나 공익을 위해 행사된다고 믿을 근거는 없다. 예컨대 국회의원이 국민을 위해 일하기보다 피감기관을 압박해 사익을 얻는다면, 이는 전형적인 이해충돌이다. 따라서 핵심은 공직자가 사익을 우선하기 어렵도록 유인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경제학자들은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해왔다. 첫째는 유인 정렬이다. 이는 대리인의 보상을 주인의 이익과 일치시키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는 경영자로부터 노력을 유인하기 위해 경영자의 연봉을 주가와 연동시키는 보상 제도를 운영한다. 그러나 공직은 원칙적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이 방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둘째, 평판 유인이다. 대리인의 장기적 평판이 중요한 환경을 조성하면, 단기적 사익 추구보다 평판 유지가 더 큰 경제적 자산이 된다. 이 방법은 변호사·의사·회계사처럼 소비자가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에는 품질을 평가하기 어려운 전문직에 특히 효과적이다. 정치인들도 선거를 통해 선택되므로 평판이 의미가 있지만, 요즘처럼 전 세계적으로 정치가 양극화되어 있는 환경에서는 특정 유권자의 표만으로도 선출될 수 있기 때문에 효과가 제한적이다.

셋째, 감시 제도이다. 이 제도는 주인이 대리인에 대한 정보를 통해 대리인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공직자에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 이유는 국민이 공직자의 행동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자신이 가진 정보에 따라 공직자의 행위에 가치를 부여하고 용인, 관용, 비난, 선거 참여 등의 방법으로 공직자에게 내릴 처분을 결정한다. 이를 통해 공직자는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행동의 범위와 사익추구의 수준을 파악하게 되고,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교정한다. 결국 어떤 행위가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사회적으로 객관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는 공직자의 재산과 윤리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 물론, 감시제도를 운영하려면 사회적 비용도 동반된다. 국가가 공직자 정보를 수집·관리하는 과정에서 행정력이 투입되고, 감시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될 위험도 커진다. 다만 오늘날에는 감시 구조가 달라졌다. 과거에는 정부나 언론이 중심이었지만, 디지털화와 정보 접근성의 향상으로 감시 권한이 시민사회로 분권화되었다. 그 결과 감시 비용은 과거보다 크게 줄었고, 정보만 충분히 공개된다면 감시제도는 가장 효율적인 통제 수단이 될 수 있다. 만약 기술 발전이 지금처럼 이루어지지 않아 국민이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면, 최민희 의원을 비롯한 이번 사안의 당사자들도 지금과 같은 정치적·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제도적 미비점은 남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이다. 최 의원과 피감기관 간에도 이해충돌의 소지가 있는 만큼, 최의원이 받은 축의금이 김영란법에 저촉된다는 법률가들의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법은 본래 부정부패를 뿌리 뽑는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제정 취지와 다르게 이해충돌보다는 공직자, 언론인, 교육자 등이 받을 수 있는 경조사비, 사례비, 강의비를 특정 한도로 제한하고 있어 임의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공직자 행동의 가치를 매기다 보니, 허용된 수수 금액이 비현실적이며, 법정 금액보다 낮은 보수를 받아야 하는 언론인이나 교육자는 법정 사례비를 받으려고 애쓰고, 반대로 법정 금액보다 높은 기여를 하는 사람은 아예 사례비를 받는 상황에 나서질 않는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이준석 의원이 최 의원에게 축의금으로 법정 금액을 초과하는 50만원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아예 국회의원에게도 김영란법은 유명무실화된 것 같다. 심지어, 최 의원은 김영란법 발의에 참여했다고 알려져 오히려 자기가 만든 법에 자기가 걸려든 셈이 됐다.

이처럼 국가가 모든 것을 정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제도를 만들면, 왜곡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공직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이해충돌 문제는 정보공개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김영란법의 경우에도 법정 금액 기준을 폐지하고, 이해충돌이 발생하거나 인지될 때 당사자가 즉시 이해관계와 수수 금액을 공시하도록 개정하면 된다. 그 이후의 판단은 사회가 스스로 내릴 것이다. 그것도 더 효율적으로.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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