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기자의눈] “쿠팡이면 된다”는 시대에 홈플러스가 남긴 질문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biz.asiatoday.co.kr/kn/view.php?key=20251104010001717

글자크기

닫기

차세영 기자

승인 : 2025. 11. 04. 17:14

검찰, '채권 사기 발행 의혹' 홈플러스 압수수색<YONHAP NO-4416>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본사 모습. /연합
KakaoTalk_20250708_211049857
차세영 생활경제부 기자
"집 앞 홈플러스 사라진다고 이마트 가나요? 안 가죠. 그냥 쿠팡 켭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의 한마디가 씁쓸하게 귓가에 남는다. 국내 2위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간 지 수개월. 그러나 주인 찾기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인수의향서 제출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10월 31일. 이름을 올린 두 곳은 모두 재무 능력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운 기업들이었다. 이에 시장에선 "사실상 유효한 인수 주체가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각에선 "인지도 확보 차원의 참여 아니냐"는 비판적 시선도 보냈다.

뚜렷한 인수 희망자도 없는 홈플러스의 쇠퇴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한때 홈플러스는 전국 상권의 핵심 앵커 테넌트였다. 점포만 126곳, 약 10만명의 관련 노동자, 협력업체 수백 곳이 얽힌 유통 생태계의 굵직한 축이었다. 그러나 지금 남은 것은 매장 축소와 임차점포 정리, 구조조정 이슈뿐이다.

많은 이들이 대주주 MBK파트너스를 겨눈다. 임차료 갈등을 명분 삼아 '엑시트'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심, 신용등급 강등을 미리 알고 회생절차를 준비했다는 당국의 의혹까지 나온다. 혁신 대신 재무 레버리지에 기대고, 체력을 깎아먹으며 버틴 끝에 구조조정 국면을 맞았다는 지적이다. 무능이 부도덕으로 번졌다는 가장 냉혹한 비판이다.

그러나 한쪽만 탓만 하기엔 시장이 너무 멀리 와 있다. 대형마트 산업 자체가 이미 진입이 망설여지는 시장이 됐다는 것이다. 이제 질문은 '누가 인수할 것인가'를 넘어 '인수해도 버틸 수 있는 시장인가'로 넘어가야 한다. 출점 규제, 의무휴업, 판매 품목 제한이 켜켜이 쌓이는 동안 이 업종은 혁신보다 '허용 범위'를 먼저 계산해야 하는 산업으로 굳어졌다.

지난 10여 년 간 대형마트가 연평균 1%대 성장에 머무르는 사이, 쿠팡은 로켓배송 인프라를 깔았고 중국 플랫폼은 초저가 공세로 국내 시장을 파고들었다. 같은 기간 온라인 쇼핑은 12% 이상 성장하며 힘의 균형을 완전히 뒤집었다. 그럼에도 온갖 규제는 여전히 오프라인만을 옭아매고 있다.

홈플러스 인수전이 난항을 겪는 건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다. '오프라인 유통업이 한국에서 미래를 그릴 수 있는가'란 질문 앞에서 누구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홈플러스의 쇠퇴가 조금 빨랐을 뿐, 이번 위기는 다른 대형마트와 유통망까지 번질 수 있는 구조적 경고다.

이 공백은 단순히 한 기업의 실패로만 끝나지 않는다. 앵커 테넌트가 무너지면 지역 상권이 흔들리고, 협력업체부터 매장 직원·단기 노동자까지 연쇄 타격을 입는다. 동시에 시장은 더 빠르게 단극화된다.

국감에서는 MBK 회장의 사과를 이끌어냈지만 그 뒤는 공허했다. '농협 인수론'과 '사모펀드 탓'만 오갔을 뿐, 산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제도 논의는 없었다. 지역 보호를 목표로 한 규제가 되레 지역의 마지막 앵커를 쓰러뜨리고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새 주인'이 아니라 '새 판'이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규칙을 다시 짜야한다. 규제는 필요하되, 질식시키는 방식이 아닌 성장 조건을 만드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6조원짜리 길 잃은 매물은 한국 유통계에 켜진 빨간 경고등이 됐다.
차세영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