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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미술관 유치와 관련해 여러 지자체들이 발 벗고 나서며 너도나도 ‘제2의 빌바오’를 꿈꾸고 있다. 부산·대구·광주·세종·창원 등이 유치전에 나섰다. 뛰어들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인이 평소 아름다운 경관을 좋아해 자주 방문했다” “이건희 회장 부친이 다닌 초등학교가 있는 곳” “세계 미술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중국과 가깝다” 등 내세운 명분도 각양각색이다. 미술관 건립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논리가 너무도 단순해 낯이 뜨거울 정도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 온통 학연과 지연으로 점철된 유치 경쟁에 이 회장의 기증에 대한 본질과 참뜻이 가려지는 느낌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국가 기증은 세계적으로도 선례를 찾기 힘들다. 고 미술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2만점이 훌쩍 넘는 방대한 규모다. 그 가치를 따진다면 어림잡아 2조5000억~3조원 정도다. 이 ‘세기의 기증’이 정치인의 치적 쌓기 수단으로 변질돼선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컬렉터의 기증 정신을 기리고 미술관의 가치를 드높일 방안에 대한 고민이 우선시돼야 한다. 아울러 이 많은 양의 귀한 미술품들을 어떻게 하면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유족의 뜻을 반영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자체들의 미술관 유치 과열 양상이 행여 부작용을 일으킬까 우려된다. 국보급 문화재와 세계적 미술품이 망라된 이건희 컬렉션을 국민이 보다 널리 향유하고 길이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건희 미술관이 지역이기주의의 결과물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