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의 모태였던 영국의 기업과실치사법은 벌금형만 있을 뿐, CEO에 대한 형사처벌은 없다. 형사처벌이 답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서울 본사에 있는 대형 건설사 CEO가 제아무리 보고를 상세히 받는다고 한들 이라크 사막에 있는 건설 근로자가 A가 졸음으로 발을 헛디뎌 추락사하는 건 막을 순 없다. A의 죽음으로 해당 건설사 CEO가 법정에 서야 한다면 과하다고 할 수 있다.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자에게 죄를 묻는 게 형법의 기본 원칙다. 중대재해법처럼 책임을 확장하면 위헌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 위헌소송부터 시작될 것이란 이야기가 법조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통계청이 정리한 국제노동기구(ILO)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0만명당 상해·질병·사망 등 산업재해를 겪는 사람들의 비율(치명율)은 1994년 34.1명에서 2006년 9.6명, 2019년 4.6명으로 대폭 줄었다. 20년간 노동현장은 개선됐고, 특히 건설현장의 인식도 많이 변했다. 더이상 산재를 우습게 보지 않는다. 사실 건설현장에서 현장 노동자의 사망을 끔찍히 싫어하는 건 건설사들이다. 사망 사고 발생시 공기가 늦어지면서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이 커지고, 관리감독청으로부터 벌점을 받아 향후 수주영업에도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노후설비를 방치해 문제가 발생하는 제조업과 달리 건설업은 사람과 사람들이 같이 일하다가 사고가 나는 확률이 높다. 사람이 움직여서 발생하는 사고가 많다보니 사고예방을 위해서는 현장 노동자의 숙련도를 높이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현장이 여유있게 돌아가도록 도와야 한다.
건설사 경영진을 단두대에 계속 보낸다고 사망사고는 사라지지 않는다. 불씨는 그대로 둔채 잔불을 정리한다고 화재가 잡힐리 만무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