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때는 동안 유약이 녹는 상태 눈으로 확인, 내 눈이 온도계
전시관은 전통 보존·전승의 산실, 지금까지 300여명 후진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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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전남 무안군 몽탄면 사천리 무안요(務安窯) 작업장에서 만난 대한민국 도자기 명장 김옥수(08-12호)는 분청사기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는 도자기에 대한 깊은 애정과 47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김 명장은 무안 출생으로, 17세부터 가업을 잇기 위해 4대째 도예의 길에 들어섰다. 질그릇과 도자기 제작기능을 전수받으며 평생을 무안 분청사기 연구에 매달려 왔다. 현재는 큰아들이 5대째 전통을 이어가며 무안요 도예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호남 최초 도자기 명장, 무안 분청의 재현에 성공
김 명장은 분청사기의 독자적 재현과 개발 기법에 성공하며 2008년 호남지역 최초로 대한민국 도자기 명장 반열에 올랐다. 이는 기능인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다.
그는 고려 말 분청사기를 굽던 무안 몽탄면 사천리, 대치리, 약곡리 일대 도요지의 흔적을 바탕으로 원료 채취지와 유약 배합비, 소성 온도까지 하나하나 복원해냈다. 수백 번의 실패 끝에 무안 분청 특유의 회청색 유약을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문헌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처음에는 막막했습니다. 흙을 바꿔보고, 재를 섞어보고, 불 온도를 달리해보며 답을 찾아갔죠"
◇담백함의 미학, 가장 한국적인 도자
분청사기는 청자와 달리 화려함보다 담백함이 매력이다. 태토의 철분 함량이 낮아 색이 밝고, 회청색 유약이 자연스러운 질감을 만들어낸다.
김 명장은 "분청은 가장 한국적인 도자"라며 "계획된 장식미가 아닌 자연스럽고 소박한 미감이 분청의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윤기가 흐르는 다른 도자와 달리, 가마 온도를 미세하게 조절해 광을 최소화하는 것이 그의 비법이다. 담담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무안 분청 특유의 질감은 이렇게 탄생한다.
◇'천민의 직업'에서 '대한민국 명장'까지
사기장은 과거 천민 취급을 받던 직업이었다. 가족과 주변의 반대 속에서도 김 명장은 분청사기의 전통을 지켜왔다. 그 끈질긴 집념 뒤에는 아내 박난경 씨의 헌신적인 내조가 있었다.
김 명장은 "명장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아내의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7전 8기 끝에 얻은 명장 칭호는 집념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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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는 무려 41개의 제작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자연에서 채취한 흙을 정제하고, 물레 성형, 백토 분장, 문양 작업, 초벌구이, 유약 도포, 재벌구이까지 이어진다. 소나무재, 떡갈나무재, 조개껍데기, 사질점토로 만든 천연 유약만을 사용한다.
"불을 때는 동안 유약이 녹는 상태를 눈으로 읽어야 합니다. 제 눈이 온도계죠."
47년 경력의 김 명장에게도 가마 앞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무안분청, 다시 빛을 기다리다
무안분청은 강진청자 쇠락 이후 남도 도공들이 이주하며 발전한 도자 문화의 본산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야마다 만기찌로는 남도 지역 도자기를 통칭해 '무안물'이라 불렀다. 이는 무안분청의 위상을 말해준다.
2016년 개관한 '김옥수 분청자기 명장 전시관'은 이러한 역사와 전통을 보존·전승하는 산실이 되고 있다. 김 명장은 현재까지 300여 명의 제자를 길러냈으며, 후진 양성과 연구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제 분청은 생활 도자기로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쓰임이 있어야 전통도 이어집니다"
600년의 역사를 지닌 무안 분청. 한 명장의 집념이 꺼져가던 도자의 불씨를 다시 지피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가치를 온전히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