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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로봇청소기에서 TV까지…‘백도어’ 공포가 판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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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기자

승인 : 2026. 02. 05. 15:52

AI TV 앞세운 TCL<YONHAP NO-5263>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6' TCL 부스에 AI TV가 전시된 모습./연합
김영진
김영진 산업1부 기자
가전은 우리의 일상에 가장 가까운 존재다. 거실과 침실, 주방 등 가장 사적인 공간을 공유한다. AI(인공지능)와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전은 더욱 똑똑해졌다. 이제는 사용자의 생활 패턴을 학습하며 사용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계다. 그러나 이 편리함의 이면에는 숨겨진 공포가 있다. 바로 '보안 위협'이다.

미국 텍사스주가 최근 TCL을 포함한 중국 연계 기술 기업에 대해 공공 사용 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중국 기업들은 막대한 내수 시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잠식해 왔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글로벌 TV 시장 매출 점유율은 TCL·하이센스·샤오미 등 중국 기업이 차지한 비율이 30%가 넘는다. 1·2위를 기록한 삼성전자(29%), LG전자(12.5%)를 합산한 수치보다 높다. 삼성과 LG가 선도하는 프리미엄 시장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최근 TCL은 소니와의 합작법인(JV)을 통해 프리미엄 시장 진입까지 노리던 참이었다.

하지만 텍사스 주정부의 규제는 TCL의 확장에 제동을 걸었다. 화려한 하드웨어 스펙 뒤에 숨겨진 개인정보 유출 위험과 불투명한 데이터 처리 과정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단발성 악재로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미 지난해 중국산 로봇청소기의 해킹 및 영상 유출 논란은 소비자들에게 '백도어(Backdoor)' 공포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줬다. 이번 TV 제재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가전제품이 카메라와 마이크를 탑재하고 인터넷에 상시 연결되면서 단순한 기기가 아닌 데이터 수집의 단말기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보안 리스크는 이제 제품의 결함을 넘어 시장 진입 자체를 가로 막는 무역 장벽처럼 여겨지고 있다.

한국 기업에는 기회와 과제가 동시에 주어졌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상대적으로 높은 보안 신뢰성을 바탕으로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경쟁사인 TCL이 규제 리스크에 직면하고 소니와의 합작 시너지도 기대가 낮아진 상황에서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확산되는 '안보 기반의 공급망 재편'은 한국 가전에 분명 유리한 구도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도 있다. 바로 '안주'다. 이번 사태로 인한 반사이익은 외부 요인에 의한 것일 뿐 영원한 경쟁력을 보장하지 않는다. AI 가전 시대의 보안 기준은 앞으로 더욱 까다로워질 것이며 소비자들은 더 높은 수준의 투명성을 요구할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글로벌 무대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려면 화질 경쟁을 넘어 데이터 주권과 보안 플랫폼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시장의 룰은 바뀌고 있는 분위기다. '가장 선명한 TV'보다 '가장 믿을수 있는 TV'가 선택 받을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 가전이 글로벌 상위권을 지켜가려면 이러한 흐름을 일시적 호재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신뢰'라는 자산을 압도적인 기술 격차로 치환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금은 기술력만큼이나 도덕성과 투명성이 실력이 되기 때문이다.

김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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