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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 덮친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갈 곳 잃은 주민들 발만 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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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기자

승인 : 2026. 01. 16. 13:19

16일 오전 5시께 화재 발생해 주민들 대피 소동
아들 예품, 약 봉투 못챙긴 주민 보여
마을회관에 임시 대피소 설치해 대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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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이 잔불을 진압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우리 아들 결혼 반지를 두고 왔어요. 내가 어떻게 모아서 산건데…"

16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화재 현장에서 만난 강모씨(66)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새벽녘 옆집 주민이 문을 두드리며 "불이야, 빨리 나와요"라고 외쳤다. 강씨는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몸만 빠져나왔다. 급히 언덕을 내려오던 순간 머릿속을 스친 건 아들의 얼굴이었다.

강씨는 "먹고 싶은 것 참고, 입고 싶은 것 안 입고 하루하루 뼈 빠지게 일해 아들 결혼을 준비해왔다"며 "최근 12월 22일로 날짜가 잡혀 아들 쥐여주려고 모아둔 금반지를 그대로 두고 나왔다"는 말을 마치지도 못한 채 눈물을 보였다.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 지붕은 주저앉았고 벽은 숯처럼 타들어 갔다. 창문은 산산이 깨져 있었고 그 사이로는 겨울을 나기 위해 쌓아둔 연탄이 빼곡히 드러나 있었다. 물에 젖은 이불과 냄비, 그을린 신발이 길 위에 흩어졌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마다 '집'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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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화재로 창문이 깨져있다, /김태훈 기자
하늘은 검은 재로 덮혔다. 소방 사이렌이 울리며 주민들에게 신속히 대피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구룡마을 6지구 주민 박천수씨(78)는 대피 도중 발걸음을 돌렸다. 급히 빠져나오던 중 복용 중인 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소방관이 위험하다며 제지했지만 그는 다시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박씨는 "약 못 먹어 죽나, 불에 타 죽나 똑같지"라고 소리쳤다.

박씨는 결국 약 봉투가 담긴 통을 쥔 채 밖으로 나왔다. 양말 하나 챙기지 못한 맨발 차림이었다. 그는 검은 재로 뒤덮인 하늘을 올려다보며 "참 세상이 가혹하다"고 했다. 박씨는 인근 마을회관으로 대피해 불길에 휩싸인 집을 향해 체념한 듯 두 손을 모으고 "30년 동안 살게 해줘서 고맙다"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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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화재로 주민들이 인근 마을회관에 대피해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불이 꺼진 뒤 주민들은 인근 마을회관으로 몸을 옮겼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배추국과 김치로 끼니를 해결했다. 주민센터 직원이 급히 생수와 라면을 공수해와 나눠주고 있었다. "입맛이 없다"며 식사를 거부하는 주민도 눈에 띄었다.

그곳에서 만난 노정애씨(80)는 "뭐라도 챙겨야 할 것 같아서 아무거나 집고 나왔는데, 목도리 두 개뿐"이라며 "내 집 어떡해"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곳에서 40년을 살았다는 한 주민은 "이 나이에 어디로 가란 말이냐"며 고개를 떨궜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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