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북한 정보화가 평화통일의 디딤돌이 되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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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헌판결의 취지를 무시하고 같은 취지의 법안을 명찰 갈이만 해서 다시 추진하는 것도 문제지만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법안 통과의 명분은 대북 전단 살포로 인해 접경지역 주민이 겪는 고통을 경감해 준다는 것 같다. 이런 대북 전단 금지법 제정이 남북대화의 불쏘시개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의 속내도 엿보인다. 이미 북한은 2019년 2월 미북 간 하노이 노딜(Hanoi no deal) 이후 남북 간 대화 단절에 대못을 박은 상태다. 따라서 이 법안이 남북대화의 모멘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는 접고 다른 방도를 강구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물론 북한의 태도가 돌변할 수 있지만 현 남북의 상황에서 돌변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정보는 단순한 자료(data)가 아니다. 정보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 권리이자 힘이다. 북한 김정은이 (외부)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엄격하게 통제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주민이 정보를 통해 자신의 권리와 힘을 갖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또한 김정은은 정보의 파급력·파괴력이 체제 위협적 요소로 작동한다는 것도 잘 안다. 이것이 최근 북한이 외부 정보 유입 통제·차단을 위해 두 발 벗고 나선 이유다. 그래서 김정은은 소위 3대 악법인 '반동문화사상배격법(2020)', '청년교양보장법(2021)', '평양문화어보호법(2023)'을 제정하고, 통제·차단의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 '인민반조직운영법(2023)'도 제정했다. 특히 '인민반조직운영법'은 인민반장이 주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악법이다. 이런 법 제정은 우리의 북한 정보화가 비대칭적 전략 자산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정보 유입의 차단·통제의 효과가 그리 오래가지 않은 것 같다. 인간은 차단하고 통제할 수록 더 큰 호기심이 생기기 때문이며, 그 호기심은 음성적으로 유통되기 때문이다. 또한 1990년대 극심한 경제위기 이후 국가가 결코 주민의 생명선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체득했고 또한 시장화도 진전되었다. 시장은 생산 및 유통 구조의 연결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정보는 필수 생산요소로 기능한다. 특히 약 600만대의 휴대전화로 가격, 환율 관련 정보가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상황에서 정보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또한 북한 내부 정보유통이 일상화되면서 시장의 모든 참여자는 정보의 중요성을 인지·실감하면서 정보의 신뢰성이 요구되고 있다. 그리고 내부정보의 신뢰성은 양질의 외부 정보와 결합될 때 그 신뢰성이 제고된다는 점도 주민들이 차츰 인지하게 되었다. 이는 양질의 외부 정보를 요구한다는 의미다.
독일통일이 우리에게 준 교훈은 북한 정보화가 북한 변화의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 법사위의 일방적 법안 통과는 북한 정보화를 통한 북한 변화의 길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사실 북한 정보화는 북한 변화의 기반을 다져주는 정신적 자산을 지원해 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남북교류·협력을 통한 경제적 지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 이를 위한 북한 주민 맞춤형 정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투입되는 외부 정보는 주민의 실질적 생활에 도움이 되는 생활 밀착형 정보이어야 한다. 즉 체제 우월성을 강조하는 정보보다는 주민의 일상을 해결해 주는 정보여야 한다. 지역별 가격정보, 환율변동 정보, 일기예보 등의 정기적 제공으로 주민은 합리적 생계 전략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런 생활 밀착형 정보는 북한주민의 신뢰를 얻는 현실적 출발점이며, 아래로부터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될 것이다.
이처럼 투입된 외부 정보를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면서 지식(정보)을 공유(shared knowledge)하게 된다. 이런 공유정보의 축적·확산은 주민 삶의 변화를 초래할 촉매제가 되어 공동지식(common knowledge)으로 발전하게 된다. 정보가 엄격히 통제되는 북한 사회에서 공유지식이 공동지식이 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정보화의 작은 물방울이 거대한 폐쇄국가 북한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북한 체제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내부의 자발적 변화를 촉진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기여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한반도통일은 잊혀져 가는 국가과제로 전락됐다. 그러나 한반도통일 없이 한반도 평화는 헛된 구호일 뿐이다. 한반도통일의 전범(典範)은 독일통일이다. 서독의 동독 정보화가 독일통일의 밑거름이 된 것처럼 우리의 북한 정보화가 한반도 평화통일의 디딤돌이 되게 해야 한다. 서독의 동독 정보화는 동독 주민의 자기 결정권(self-determination) 행사로 독일통일이 가능했다. 결국 북한 정보화는 북한 주민이 자기결정권 행사의 기반이 되고, 통일한국을 완성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래서 여당의 북한 정보화 차단 입법안은 잘못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조영기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총장, 전 고려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