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그룹은 정부의 '생산적 금융' 전환 기조에 발맞춰 미래 성장 산업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웨어러블 로봇을 매개로 한 새로운 금융모델을 내놓으며, 고령화와 헬스케어라는 사회적 과제와 신산업 성장을 동시에 겨냥했다. 단순히 자금을 조달하는 수준을 넘어, 금융이 산업 생태계의 한 축으로 직접 참여해 기술 확산을 돕는 전략을 구체화한 것이다.
정부는 앞서 AI·로봇 등 30대 전략산업을 지정하고, 5년간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집중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하나금융의 이번 행보는 정부 정책과 방향성을 같이하면서도, 민간이 독자적으로 실행 가능한 모델을 선제적으로 내놨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함영주 회장이 강조해 온 '생산적 금융' 철학이 로봇산업과 결합하면서, 금융권 전반의 변화를 이끌 새로운 시도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하나금융은 웨어러블 로봇 전문기업 엔젤로보틱스와 협약을 맺고 ESG 사업 협력, 시니어 맞춤 헬스케어, 글로벌 동반진출, 로봇 금융지원 및 금융상품 개발 등 4대 전략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기업 간 협력을 넘어, 고령화와 헬스케어 수요 확대라는 구조적 변화를 금융이 어떻게 뒷받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즉, 금융이 신산업 성장의 후방 자금원이 아니라 산업의 성장 단계마다 맞춤형 해법을 제시하는 촉진자 역할을 지향하는 것이다.
우선 시니어 맞춤 헬스케어 전략이 핵심이다. 하나금융은 하나은행 하나더넥스트 라운지에서 체험존을 설치해 고령 고객이 직접 웨어러블 로봇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단순 상담이 아닌 '체험·상담'으로 이어지는 절차를 통해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가입까지 이끌어내 수요와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초기 단계에서는 기업용(B2B) 의료 리스 모델을 우선 도입하고, 이후 개인용(B2C) 모델 상용화가 본격화되면 할부·보험 결합 등 금융상품으로 확대하는 단계별 전략도 예상된다.
이어 ESG 협력에서는 사회취약계층이 있는 요양원·복지관 등에 로봇을 보급하는 방식이 우선 논의되고 있다. 아직 구체적 방식이나 재원 구조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단순 기부를 넘어 금융 지원과 연결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장기적으로 로봇 운용 과정에서 쌓이는 데이터가 금융과 접목될 경우, 사회적 가치와 금융 건전성을 함께 높일 수 있는 모델로 발전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전략도 발맞춰 진행된다. 엔젤로보틱스는 올해 태국과 베트남에서 웨어러블 로봇 '엔젤렉스 M20'의 의료기기 인증을 획득했고, 차세대 모델 '엔젤슈트 H10'은 미국 FDA 인증을 준비 중이다. 하나금융은 이를 교두보로 삼아 현지 금융 지원과 파트너십을 제공하고, 이후 미주·유럽 시장 등 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하나금융은 글로벌 26개국 네트워크를 보유한 만큼, 해외 진출의 가교 역할을 맡음으로써 로봇기업의 성장 경로를 함께 설계한다.
고령친화 산업 자체의 성장 잠재력도 뚜렷하다. 글로벌 보행·재활 로봇 시장은 2024년 29억 달러에서 2033년 98억 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다. 웨어러블 보조 로봇 시장은 2023년 15억 달러에서 2030년 72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초고령사회 진입과 헬스케어 수요 급증이 맞물리는 상황에서 금융이 이 영역에 뛰어드는 것은 단순한 틈새 공략이 아니라, 장기 성장 기반을 선점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협약이 금융권 자체의 '생산적 금융'으로 확산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단기 성과보다 데이터 축적과 상품화에 초점을 맞추고, 장기적으로는 유동화와 자본 효율성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모델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가 추진하는 생산적 금융 전환 기조와 맞닿아 있으며, 민간 금융사가 실현 가능한 모델로 구체화했다는 평가다.
은행권 관계자는 "로봇과의 금융 결합은 고령화라는 사회적 과제와 미래산업 성장이라는 두 축을 동시에 겨냥한 전략으로 보인다"며 "생산적 금융이 현재 금융권의 주요 현안인 만큼, 이번 시도가 적지 않은 변화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