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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자금·승계用 ‘자사주 꼼수’ 여전…이사회 ‘반대’는 극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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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영 기자

승인 : 2025. 07. 10. 18:10

이사의 충실 의무 주주로 확대됐지만
감시·견제보다는 거수기 역할만 수행
전문가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제시
0710 2면톱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사회의 충실 의무가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됐지만, 여전히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사들은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하면서 주주의 이익을 헤치는 경영진의 독단적인 결정을 막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최근 자사주로 꼼수를 부리는 경영진의 행태에 '반대'의사 표시를 한 이사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자사주를 기업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소각 의무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일부 기업들이 자사주를 '금고'처럼 우호지분으로 사용하거나 경영 승계 활용에 쓰는 행태를 막기 위해서다. 특히 사외이사들이 '반대'의견을 낼 수 없는 이사회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경영진의 독단적인 결정에 반대의사를 낼 수 있는 사외이사들도 일정 부분 이상 확보를 하면서 안건에 대한 찬성 의견이 과반이 되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태광산업이 지난달 자사주 전량을 담보로 3186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발행 결정 당시 이사회에서 반대표를 던진 사외이사는 단 1명이었다. 지난 6월 27일 열린 태광산업 이사회에는 유태호 대표이사와 정안식, 최영진, 김우진, 안효성, 오윤경 등 총 6명의 사외이사가 참석했는데 이중 김 사외이사만이 "교환사채 발행시 기존 주주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반대한다"고 밝혔다.

당시 태광산업은 '신사업 투자를 위한 자금조달'이 목적이라면서 EB발행 인수자도 공개하지 않았다. EB의 표면·만기 이자율이 0%였기 때문에 향후 태광산업 주식 물량이 시장에 대거 풀릴 것이란 예상에 주가도 하락했다. 이후 7월 2일에 열린 이사회에선 EB발행 인수자를 한국투자증권으로 하는 안건이 상정됐다. 이날은 사외이사 6명 중 2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김 사외이사와 안 사외이사였다. 김 사외이사는 지난번과 같은 이유로 반대했고, 안 사외이사는 "선정된 인수인(한국투자증권)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세무상 리스크를 우려한다"고 밝혔다.

사외이사들의 반대 목소리에도 태광산업은 "2명의 이사를 제외한 출석이사 전원(4명)이 이의없이 찬성해 원안대로 승인한다"면서 EB발행 결정을 강행했다. 사외이사 과반이 반대의사를 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태광산업 2대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이 EB발행에 대한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데 이어 금융감독원도 정정요청을 하면서 자사주 처분 논란은 일단 중단된 상태다.

그나마 태광산업 이사회는 반대 목소리라도 냈지만, 최근 자사주를 싼값에 처분하거나 경영권 방어에 활용하려는 기업들의 이사회에선 반대 조차 하지 않았다.

자사주 100만주를 주당 1만 2170원에 케이프투자증권 등 투자자들에 처분한다고 밝힌 환인제약도 마찬가지다. 지난 7일 환인제약은 이사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안건을 승인했다. '유통주식수 증가를 통한 거래 활성화 및 운영자금 확보'차원에서다. 전일 종가의 5% 할인율을 적용했다고 하지만, 취득가액 대비 낮은 가격으로 자사주를 처분한데다가 4개월 전에는 "자사주 처분 계획이 없다"고 결정한 것을 뒤집은 결정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실제 이날 환인제약 주가는 전일 대비 4% 가까이 하락했다.

이같은 자사주 처분 결정 번복에도 이광식 대표이사를 포함한 5명의 이사들은 단 한 명의 반대표없이 해당 안건을 승인했다.

코스닥 상장사인 솔본도 최근 자사주 167만 9052주를 계열사 테크하임에 양도하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자사주 처분 목적은 '중장기 경영자금 확보'다. 1주당 처분 가액은 4080원이다. 지난 2일 열린 솔본 이사회에서도 이번 자사주 처분 결정에 전원 찬성했다. 회사측은 이사들에 "장외처분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라 주식 가치 희석 효과는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솔본의 자사주 취득가는 4790원이었는데, 이보다 낮은 가격으로 계열사에 자사주를 매각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되기 전에 우군인 계열사에 처분해 최대주주의 지배력을 높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진양제약도 지난 2일 이사회를 열고 자사주 32만주를 최윤환 대표이사 회장에게 처분한다는 내용의 안건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처분 예정금액은 20억원 수준으로 '기업 운영자금 확보 및 재부구조 개선'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진양제약은 작년 1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낸 곳이다. 운영 자금 확보를 위해 자사주를 처분했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오히려 최대주주의 지배력 확대를 목적으로 보는 의견이 상당하다. 진양제약의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30% 수준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진양제약의 이사회는 최재준 대표이사가 의장, 최윤환 회장, 지용훈 회장 등 총 3명에 불과하다. 최재준 대표의 부친이 최윤환 회장이다. 이사 3명 중 2명이 부자관계이기 때문에 만장일치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특히 이 회사는 과거 자사주를 취득하면서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했는데 결국 자사주를 오너일가의 지배력 확대에 사용하게 됐다.

회사의 중요 결정 사항인 인적분할을 두고 번복한 파마리서치의 이사회도 거수기에 불과했다. 파마리서치는 지난 6월 13일 이사회를 열고 의약품·의료기기·화장품 등 사업부문을 인적분할해 지배구조를 개편한다고 밝혔다. 출석이사수 8명 모두 인적분할 안건에 찬성했다. 문제는 이미 인적분할을 결정한 후에야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던데다 주가 하락세도 계속됐다는 점이다. 이에 파마리서치는 약 3주만인 7월 8일 이사회를 열고 "소액주주들의 반대 의견, 시장에서의 공감대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분할 추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분할 절차를 중단한다"고 밝혔고 이에 대해서도 이사회 전원이 '이의없이 찬성'했다.

전문가는 기업들이 자사주를 주주의 이익이 아닌 기업 경영과 승계 자금에 이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들이 각종 편법이나 꼼수를 쓰면서 자사주를 경영 승계나 경영 자금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돼야 한다"면서"사외이사들 또한 기업에서 받는 여러 혜택이 있으니 반대의견을 내기 쉽지 않은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외이사들의 과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했을 때,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사들을 일정 부분 이사회에 선임하는 등의 보완책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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