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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내로남불 사법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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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연 기자

승인 : 2025. 05. 22. 06:00

정파적 이해 따른 '사법 흔들기' 법치주의 근간 해쳐
국회 법사위, '대법원 대선개입' 청문회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연합뉴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흔히 '내로남불'이라 줄여 부르는 이 말은 같은 행동이라도 타인에게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며 비난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해지는 이중적 태도를 풍자한다. 최근 한국 정치가 사법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 말만큼 정확하게 묘사한 표현도 없다.

비상계엄의 후폭풍이 헌법재판소가 있는 안국동을 지나 대법원이 있는 서초동으로 넘어오면서 사법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사법부를 향한 정치권의 '내로남불' 공격이 도를 넘고 있어서다. 지난 1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국민의힘은 "사법부의 편향성·정치화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사법부의 공정성과 신뢰성은 땅에 떨어졌다"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법치주의를 앞세워 온 보수정당 지도부가 법원 결정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강력한 반기를 든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강성 지지층의 결집을 노린 보수 진영의 '사법때리기'가 사상 초유의 서부지법 난동 사태를 촉발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 3월 법원이 윤 전 대통령의 구속취소 청구를 인용하자 상황은 또 바뀌었다. 민주당은 구속취소를 결정한 지귀연 부장판사를 향해 "내란수괴가 형사재판 법정을 헌법정신과 주권자를 모독하는 장으로 만들고 있는데 재판부는 그런 내란 수괴를 감싸고 있으니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현재까지도 민주당은 '지귀연 룸살롱 접대 의혹' 등으로 연일 사법부에 맹폭을 퍼붓고 있다.

결국 정치권의 사법부를 향한 태도는 정파적 이해에 따라 달라진다. 판결이 자신이나 소속 정당에 유리할 때는 '사법 정의가 살아 있다' '법치주의의 승리'라며 사법부를 칭송하지만, 불리한 판단이 내려지면 곧바로 태도를 바꿔 '정치적 판결' '사법 쿠데타'라는 자극적인 프레임을 덧씌운다.

정치인의 이 같은 태도는 국민에게 '기준의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은 국민들이 옳고 그름을 나누는 가늠자가 되기도 한다. 정치인이 앞뒤가 다른 태도를 보이면 국민은 무엇이 정의이고, 어떤 기준이 공정한 것인지 혼란스럽게 된다. '법대로 하자'고 외치면서 그 판단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법을 부정해 버리는 것은 법과 제도, 그 자체에 대한 불신을 불러올 수 있다. 정치인의 말이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단초가 되는 것이다.

반면 사법부도 국민의 법 감정과 일치하지 않거나 특정 이익에 부합하는 편향적 결정을 내릴 때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판결에 대한 비판은 사실과 논리, 명확한 기준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금 정치권의 태도는 지극히 감정적이며, 철저히 정략적이다. 정치권은 사법 제도의 개혁이나 발전을 위한 비판을 하기 보다 당장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도구로 사법부를 소비하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내로남불식의 사법 불신 조장은 단기적으로는 지지층 결집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과 냉소를 키울 뿐이다.

사법부를 흔드는 행위는 단지 정치적 유·불리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행위다. 정치권은 이제라도 공정한 법과 그 법을 존중하는 태도 위에서만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제대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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