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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집값 문제, 공급 늘려서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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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3. 2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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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미윤 명지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교수
"집값이 오르니 공급을 늘려야 한다."

이 말은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수요가 많으면 공급을 늘려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역대 정부마다 반복해 온 논리였고, 현 정부도 270만 호 주택 공급을 약속했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한 논리는 모든 시기와 상황에 똑같이 작동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공급이 늘어도 집값은 되레 올랐다. 지난 10년(2014~2023년) 동안 전국 주택 재고 수는 346만 호 늘었지만, 아파트 매매가는 같은 기간 40% 상승했다. 서울은 순공급이 27만 호 늘었지만, 아파트값은 70% 가까이 뛰었다. 반대로 팬데믹 이후 2년간 공급이 감소했을 때는 오히려 가격이 하락했다. 공급만으로 집값을 설명하기엔 한계가 분명한 것이다.

공급을 늘리면 가격이 하락하는 경제 원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공급이 증가하면 오히려 새로운 수요를 자극해 가격이 다시 오르는 경우가 많다. 마치 고속도로를 확장하면 교통체증이 줄어들 것 같지만, 더 많은 차량이 몰려 다시 막히는 것과 같다.

주택 공급도 마찬가지다. 새 집이 들어서면 생활환경이 개선되는 편익 효과가 발생해 추가 수요를 불러들이는 역효과가 생긴다. 공급 논리는 주택시장의 힘의 불균형을 해소하지도 못한다. 더 많은 집주인이 생긴다고 해서 주택이 더 저렴해지지는 않는다.

또한 신규 공급이 전체적으로 가격 안정 효과를 가진다 해도, 그 혜택은 일부 계층에 집중되기 쉽다. 의자 수를 늘리면 모두 앉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의자가 고급 소파라면 서 있어야 하는 사람은 여전히 서 있을 수 밖에 없다. 지금 청년과 서민층의 주거불안은 여전하다. 집이 있어도 살 수 없고, 지어도 안 팔리고, 지방은 썰렁하고 강남만 들썩이는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이 지금 우리 사회의 주택 실상이다.

최근 영국의 경제사회연구소는 "주택 문제는 단순한 수요·공급 불균형이 아니라, 금융·조세·자산 불평등이 얽힌 시스템의 실패"라고 진단했다. 집을 많이 짓더라도 실수요자에게, 적정 가격으로, 필요한 지역에 공급되지 않는다면 가격 안정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집값 상승의 배경으로 금융, 세제, 복지 등 복합적 구조의 실패를 지적하며, 단순한 공급 확대만으로는 집값 안정이 어렵다고 경고한다.

오늘날의 고비용·고부담 공급 구조는 정책이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변화에 눈감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택은 그저 건축물이거나 건설 활동이 아니고 금융정책, 조세체계, 복지제도 등이 집약된 사회경제적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데, 강남 집값 올랐다고 수도권에 수십만 호를 더 짓는다고 가격이 안정되겠는가. 오히려 정부의 공급 신호는 투기 심리를 자극하고, 규제 완화는 자산가에게 추가 매수의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그 결과, 집을 지을수록 자산 불평등이 심화되는 역설이 반복되고 있다.

주택 공급은 필요하고 또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공급 그 자체가 문제의 해결은 아니다. 총량만 내세우고 낡은 시스템은 그대로 둔다면 국민의 주거불안을 진정시키기는커녕 불신만 더 키울 것이다. 집값 하위 10%와 상위 10%간 격차는 40배가 넘고, 12억원 초과 주택 보유자의 평균 소유주택수가 3채를 넘는 현실은 주택의 도덕적·정책적 과제가 이미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을 얼마나 더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에,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제공할 것이라는 물음이다. 이 치열한 고민이 없다면, 공급정책은 또다시 실제 집이 필요한 계층을 외면한 채, 시장이 원하는 공급만 반복하게 될 것이다. 공급 부족 담론은 언제나 잘 먹혔다. 다시금 고개 드는 공급 가뭄, 공급 절벽, 착공 부진 등의 여론이 우리 사회를 '공급의 함정'에 또다시 빠뜨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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