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밀입국자 최소 15만명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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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 등 스페인어권 외신에 따르면 쿠바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NGO)인 PD(Prisoners Defenders)는 지난 24일 쿠바 주민 23명이 전력난과 식량난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한 혐의로 당국에 체포됐다. 당시 체포된 주민의 수를 지방별로 집계해 공개한 PD는 "쿠바 정부가 이에 대한 공식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어 실제로 체포된 주민은 더 많을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 17일과 18일에도 쿠바 곳곳에서 만성적 전력난과 식량난에 지친 주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를 벌였다. 오랜 기간 동안 주민들을 통제해온 사회주의국가 쿠바에선 전례를 찾기 힘든 이례적인 일이다. 중남미 언론은 "쿠바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심각한 경제난 탓에 최근 쿠바 일부 지방에선 14시간 이상 정전이 계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심각한 건 주민들이 매일 겪는 식량난이다.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불구가 된 가족을 돌보기 위해 앞당겨 퇴직한 쿠바 주민 마리아 포소(여, 57)는 지난 2월 정부로부터 약간의 쌀과 콩, 설탕, 소금, 기름 1병, 다진 고기 2팩, 소시지 1팩, 세제 2개를 배급받았다. 매일 1인당 1개씩 빵이 배급되지만 가족을 위한 식탁을 차리기엔 식품의 종류와 물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배급도 간헐적이고 양도 충분하지 않았다"며 배급으로 넉넉하게 생활하던 예전과는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다고 했다.
과거 쿠바에선 주민들에게 햄버거와 생선, 초콜릿, 연유, 밀가루 등은 물론 심지어 웨딩케이크와 맥주까지 배급했다. 칫솔 같은 생활필수품도 빠지지 않았다. 생계를 보장하는 배급표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주민들은 배급표가 훼손되지 않도록 비닐에 넣어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소중하게 보관하곤 했다.
포소는 "이제는 국가가 무엇을 준다고 해도 조각뿐이고(그 정도로 양이 확 줄었고) 배급날짜도 지켜지지 않는다"며 "(배급을 받지 못해 채워지지 않는) 니즈가 많다"고 말했다.
배급 사정이 날로 악화되자 쿠바 정부는 부분적으로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2021년부터 민간에 창업을 허용하기로 하고 허가를 내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가격이 비싸 주민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나의 중소기업'으로 불리는 민간상점에서 5kg 단위로 포장된 닭고기는 3000페소(암시장 환율로 약 10달러)에 판매된다. 국가로부터 보통 7000페소 정도의 월급을 받는 일반 주민이 지갑을 열기엔 상당히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포소는 "(퇴직 후) 1개월 생활비로 3000페소를 쓰는 나로선 엄두도 내지 못할 지출"이라고 말했다.
경제난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쿠바를 이탈하는 주민의 수는 역대급으로 늘고 있다. 미국의 공식 통계를 보면 지난해 쿠바를 탈출해 미국으로 밀입국한 쿠바 주민은 최소 15만3000명이었다. 앞서 2022년엔 쿠바 출신 31만3000명 이상이 미국으로 밀입국했다. 2023년 6만7000명 등 미국이 시행하고 있는 특별입국허가프로그램을 통해 합법적으로 미국에 입국한 주민을 제외해도 쿠바를 이탈한 주민은 최소한 47만명에 육박한다.
미국 플로리다국제대학 쿠바연구소의 호르헤 두아니 소장은 "쿠바의 공산주의 혁명이 발생한 1959년 이후 2년간 이탈 주민이 이처럼 많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중남미 언론은 "쿠바가 전격적으로 대한민국과 수교한 것도 총체적 위기로 확대되는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전략적 결정이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