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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치안부는 지난해 다리엔 갭을 통과시켜주는 대가로 범죄카르텔이 불법이민자들에게 챙긴 수익이 약 8억2000만 달러로 추정된다고 최근 밝혔다.
후안 마누엘 피노 치안장관은 "콜롬비아의 무장 마약카르텔 '걸프족'(Clan del Golfo)이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며 "불법이민의 증가가 범죄단체에 엄청난 부를 안겨주고 있다"고 말했다.
콜롬비아와 파나마 사이에 위치한 다리엔 갭은 중남미를 연결하는 정글이다. '죽음의 정글'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연환경이 워낙 험한 곳이지만 미국을 최종 목적지로 잡고 길을 나선 남미의 불법이민자가 육로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곳곳에 사고의 위험이 잠복해 있는 다리엔 갭에선 범죄도 성행한다. 사실상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오지에 발을 들여놓는 불법이민자를 타깃으로 삼는 범죄다. 특히 여성이라면 성범죄에 대한 공포가 크다. 구호단체 국경없는의사회에 따르면 2월 마지막 주에만 다리엔 갭에선 성폭행 피해자 113명이 구조돼 치료를 받았다. 관계자는 "1주일 동안 치료를 받은 성폭행 피해자가 지난해 월 평균의 배에 달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국을 떠나 길게는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 다리엔 갭 앞에 선 불법이민자들은 "안전하게 정글을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안내인의 제안을 뿌리치기 힘들다. 이런 제안을 하는 안내인은 마약카르텔 조직원이거나 마약카르텔이 고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을 건널 때 타는 보트 탑승료 40달러, 걸어서 이동할 때 동행하는 안내비용 170달러, 언덕 등 험한 구간을 통과할 때 이민 가방을 대신 운반해주는 서비스 100달러 등 세분화해 각각의 비용을 청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최근엔 패키지 상품이 유행이라고 한다. 1인당 최저 500달러를 받고 식사와 장화 등 정글을 통과할 때 필요한 장비까지 제공하는 일종의 종합서비스다. 기상조건이나 개인의 체력 등 변수가 많지만 다리엔 갭을 통과하는 데는 보통 5일이 걸린다. 하루 100달러 꼴인 셈이다.
그러나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도 들린다. 라레푸블리카 등 일부 현지 언론은 "범죄카르텔이 최저 1000달러에서 최고 5000달러를 받고 있다는 증언이 있다"고 보도했다.
익명을 원한 콜롬비아 경찰 관계자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승리하면 미국이 국경을 굳게 닫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해 하루라도 빨리 미국에 들어가려는 불법이민자는 당분간 더욱 늘어날 수 있다"며 "이를 기회로 삼고 범죄카르텔이 더 많은 돈을 요구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파나마 치안부에 따르면 2023년 미국 입국을 위해 다리엔 갭을 통과한 이민자는 52만 명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이는 2022년 24만8000명과 비교하면 100% 이상 늘어난 수치다. 국적별로 보면 경제위기가 만성화한 베네수엘라 주민이 가장 많았고 이어 에콰도르, 아이티, 중국 출신 순이었다.
올해도 불법이민자 행렬은 꼬리를 물고 있다. 파나마 치안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12일(현지시간)까지 다리엔 갭을 통과한 불법이민자는 이미 8만 명을 넘어섰다.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올해 다리엔 갭을 거쳐 미국 국경까지 올라가는 불법이민자는 지난해보다 20%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