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령으로 탈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
20일(현지시간) 휴리엣 등 터키 현지언론은 터키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고 퇴치하는 데에 있어 국가가 해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를 결정하는 국제 인권 협약인 이스탄불 협약이 종결됐다고 보도했다.
2014년 8월 발효된 이스탄불 협약은 전통·문화·종교를 여성에 대한 폭력 행위의 명분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을 기조로 이를 예방 및 대처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 및 실행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터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등 총 46개 회원국이 서명했으며 협약국은 여성에 대한 신체적·정서적·성적·경제적 폭력과 스토킹·성폭력·성희롱·여성 할례·강제 결혼·강제 낙태 및 불임 시술 등에 형사적·법적 제재를 부과할 의무가 있다.
이스탄불 협약은 2012년 터키에서 최초로 비준했으나, 최근 보수성향 집권당 내부에서 전통적인 가족 구조에 악영향을 주고 동성애를 장려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다시금 논의됐다.
|
터키 가족노동사회부 장관 제흐라 줌륏 셀축 역시 트위터를 통해 “2002년부터 레제프 타이입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지도 아래 모든 여성이 정치, 경제 및 사회 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규정들이 시행되었다”라며 “우리의 법률 시스템은 필요에 따라 새로운 규정을 구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에크렘 이맘오울루 이스탄불 시장은 반대 의사를 표했다. 그는 탈퇴 결정이 수년간 이어진 여성들의 투쟁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여성 폭력이 매일 일어나고 있는 나라에서 이스탄불 협약이 탈퇴되었음을 발표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전했다.
터키 변호사 협회는 대통령령만으로는 이스탄불 협약에서 탈퇴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국제 협약 탈퇴를 위해서는 권한 철회를 허용하는 별도의 법적 조항이 필요하다. 여성의 권리 보호 문제를 떠나 이번 협약 탈퇴 자체가 불법이라는 이야기다. 대통령령으로 본 국제 협약에서 탈퇴할 수 있다면, 다른 국제 협정 역시 같은 방식으로 종료될 가능성이 있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에서도 이들의 주장에 공감하며 이스탄불 협약 탈퇴 절차 무효화를 최고 행정 재판소에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
반면 “거의 매일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인이 일어나는 나라에서 여성과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인권에 반하는 활동을 하는 것은 명백한 국가 권력 남용이다”, “이스탄불 협약 최초 서명국의 자랑스러움은 어디로 갔는가?”, “국가가 여성의 뒤에 서지 않겠다는 뜻이냐”라며 정부의 결정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높다.
터키 곳곳에서는 여성단체와 일부 정당, 일반인 여성들로 구성된 수천 명의 시위대가 이스탄불 협약 탈퇴에 반대하는 집회와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많은 여성 인사, 기관 및 단체, 인플루언서들이 ‘이스탄불 협약(istanbul sozlemesi)’ 해시태그를 달며 이스탄불 협약 탈퇴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이날도 이스탄불, 이즈미르, 부르사, 부르두르 등 터키 각지에서 아내, 어머니, 여자친구를 대상으로 발생한 여성 폭력 및 살해 뉴스가 지면을 뒤덮었다. 터키 정부가 여성에게 미치는 모든 종류의 폭력 예방에 관해 구체적으로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