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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던진 남성의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구체적으로 무슨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신발로밖에 표현하지 못한 가슴속 응어리는 협치를 내세운 문 대통령과 정부가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신발 사건을 투척자 개인의 문제로 넘기기엔 우리 사회의 분열의 골이 깊다. 정치적 대립은 더 그렇다. 어느새 진보에게 보수는 일본보다 미운 적이, 보수에게 진보는 미국보다 못한 친구가 됐다. 19일 열린 이승만 전 대통령·여운형 선생 추도식과 고(故) 백선엽 장군에 대한 평가 등만 봐도 가치가 엇갈리는 일에서는 서로 이질감까지 느껴진다.
문 대통령도 협치의 실패가 뼈아팠다며 문제를 깊이 인식했다.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등 소통의 노력을 예로 들 때는 줄곧 대립으로 맞선 야당에 대한 서운함도 엿보였다.
하지만 ‘정치적 반대자’와의 소통에선 정부에도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일찍이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한다”며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기에 아쉬움은 더 크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이래 포용국가를 각별히 강조해왔다. 실제 저소득층과 장애인, 외국인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정책의 성과는 응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다만 진정한 포용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선 선거에서 ‘1번을 찍지 않은’ 유권자들도 감싸 안아야 한다.
21대 총선으로 정부·여당엔 더 큰 힘이 주어졌다. 더 큰 책임도 지워졌다. 176석의 거대한 힘만큼 조금은 생각이 다른 국민들을 이해하기 위한 소통의 폭도 키워 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