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대통령·국회의장 모두 사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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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는 전날 생방송 TV 연설을 통해 시위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하리리 총리는 사임서를 제출하기 위해 대통령 궁으로 향하기 전 “나는 막다른 길에 부딪혔다. 상황을 타개하려면 큰 충격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하리리 총리의 사임 의사가 명확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은 총리직 사임을 거부하고 총리에게 새 내각구성을 요청하거나 총리를 다른 부처의 임시 수장으로 임명할 수 있다. 또는 새로운 총선을 시행할 가능성도 있다.
대규모 시위는 지난 17일 정부가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프로그램인 왓츠앱 사용에 하루 20센트씩 한 달 6달러의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발발했다. 경제난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가중된 데다 국영 통신사의 수입이 급감한 틈을 타 세수 확보에 나선 정부에 불만이 폭발했다. 정부의 세금 부과 조치 철회와 개혁안 발표에도 소요 사태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부를 옹호하는 시아파 헤즈볼라와 시아파 정파 아말의 지지자들이 반정부 시위대의 텐트를 급습하고 불을 지르는 등 종파 싸움으로까지 확장될 조짐이다.
반정부 시위대는 경제 상황 타개와 함께 종파적 통치체제의 폐지도 요구하고 있다. 시위대는 지도자들이 국내 문제보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강대국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이번 시위를 내전 이후 고착화된 정치 체제를 종식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사퇴를 재차 요구하는 등 개혁정부를 향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역사적으로 레바논의 정치는 종파 노선을 따라 분열됐다. 1990년까지 15년간의 내전 기간 약 12만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전쟁 중 주도권을 장악한 군벌이 정부 고위직을 맡아왔다. 레바논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채택하지 않은 아랍국가로 여러 종파를 인정하기 때문에 종파 싸움에 따른 정치적 통일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는 종파 간 세력 균형을 위해 기독교·이슬람교 출신 의원에 각각 같은 의석수를 보장하지만 각 종파를 지지하는 강대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실정이다.
하리리 총리 역시 재임 기간 내내 미국과 사우디로부터 시아파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를 통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는 2017년 총리 사퇴 발표 및 번복 때도 헤즈볼라에 대한 통제가 너무 약하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사우디는 하리리 총리와 그의 수니파 이슬람 정당을 지지하지만 이란은 시아파 헤즈볼라를 밀어줘 레바논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은 멈출 줄 모른다.
일각에서는 이번 총리의 사임이 정치적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새 시대를 마련하기 위한 발판으로 작용할 것이란 긍정적 전망도 나온다. 레바논 출신 대서양협의회 연구원인 앤소니 엘구시안은 “이번 사건(총리 사임)은 놀랄 만한 단기적 성공”이라며 “시위대가 개혁을 지속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