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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우디가 칼리드 알 팔리 에너지부 장관을 해임하고 후임으로 압둘아지즈 빈 살만 왕자를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압둘아지즈 왕자는 빈 살만 왕세자의 이복 형으로 에너지부 국무장관을 맡고 있었다. 이번 인사는 석유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해 왕가 구성원을 경제 분야의 수장에 임명하지 않았던 사우디의 오랜 관례를 깬 것으로 주목받는다.
파격 인사의 배경에는 국제유가 하락 및 경제개혁의 부진이 짙게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와 비회원 산유국 10개국을 포함한 오펙플러스(OPEC+)의 감산 결정에도 미국 중심의 노펙(NOPEC) 국가들이 원유 생산량을 늘리면서 유가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알 팔리는 오펙(OPEC)의 공동 장관으로서 3년간 러시아와 오펙간 감산 협상의 설계자이자 사우디 에너지 정책의 핵심인사였다. 일일 사우디 산유량을 1000만 배럴 미만으로 축소시켜 국제유가 상승에 기여하고자 했으나 하반기에도 유가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면서 왕국 입장에서 볼 때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사우디 실세인 빈 살만 왕세자는 산업을 다변화하고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비전2030’ 아젠다를 추진해왔다. 석유산업을 통한 수익 창출이 이 같은 개혁의 추진 자금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국제유가 가격 방어는 필수적이다. RS에너지 그룹의 데렉 브로워 이사는 “알 팔리는 사우디에 필요한 배럴당 70~80달러를 밑도는 국제유가와 지속적인 경제 약세에 따른 대가를 치뤘다”고 평했다.
아람코 IPO의 무산도 인사 개각에 한 몫 했다. 아람코는 지난해 하반기 지분의 5%를 국내외 증시에 상장하는 대규모 IPO를 추진했으나 공모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연기하는 방안을 택했다. 반(反)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기 살해 사건의 배후가 밝혀지며 사우디의 대외 여론이 악화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지난 3일 정부는 아람코 IPO에 부정적이던 알 팔리의 아람코 회장직을 국부펀드 인사로 교체했다. 새 회장에 오른 야시르 오스만 알루마이얀 공공투자펀드(PIF) 총재는 빈 살만 왕세자의 최측근으로 ‘비전2030’의 자금 조달을 담당하고 있다. 사실상 아람코와 에너지부를 분리해 최측근을 중심으로 아람코 IPO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