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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게 영문으로 기술된 213쪽의 PDF 문서를 주고, 국문으로 번역해 달라고 요청해 보자. 순식간에 뛰어나게 번역한다. 그런데 전문이 아니라 요약본이다. 요약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달라지지 않는다. 기술의 한계 때문이다. AI는 양이 많아도 통째로 읽을 수 있지만, 번역 결과는 통상 6천 단어(약 8천 토큰) 정도에서 보여줄 수 있다. 즉 입력은 병렬 처리를 하지만, 출력은 한 번에 하나씩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특성이 있다. 결국 기하급수적으로 컴퓨터 자원을 소모하기에 제약을 심하게 설정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요약하라고 유도된 상태(Reinforcement Learning from Human Feedback)다. 인지 부하를 줄여라. 핵심만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전달하라. 즉 유용성 편향(Helpfulness Bias)이 기본 세팅이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특별한 주문만이 해결책이다. 편향을 무력화하는 전사(Transcription)를 지시한다. 그리고 적정한 길이(Chunking)로 번역해 통합한다. 번역된 전체 문서를 워드 문서로 확인할 수 있도록 명령한다. 이 모든 요구사항을 한번에 매끄럽게 조치하도록 구조적인(Markdown) 글쓰기로 프롬프팅한다. 이렇게 입력한 프롬프트 글자 수는 흔히 1,800자를 넘어간다. 이렇듯 거대 언어 모델(LLM)의 지식을 굳이 공부하면서 지난한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야 어렵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여기까지가 기술의 전부라면, 우리의 인생은 참으로 고단할 것이다.
그러나 자율 에이전트 시대라고 하지 않았던가. 무언가 크게 달라진단 의미이겠지. 외국어로 작성된 수백 페이지의 PDF 파일을 첨부하기만 하면, 전문지식이 없어도 그리고 우리의 어떤 개입이 없어도 원하는 결과가 도출된다. 요술램프의 지니에게 소원을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일까. 빌어보자. 화면 왼쪽에 원문이 있고, 오른쪽에 번역문이 있도록 해 줘. 원문의 특정 단락을 선택하면 오른쪽 바로 옆에 번역문이 나오도록 해 줘. 이런 구도로 전체 번역본을 워드 문서로 다운로드 받게 해 줘. 원문을 깊이 있게 통찰해 줘. 원문과 통찰 결과를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하게 슬라이드로 만들어 줘. AI는 우리의 기대 사항을 약 4,000자가 넘어가는 프롬프트로 자동 생성해서 실행한다. 총괄 AI(Master Agentic Orchestrator)는 팀장처럼 개별 업무를 수행할 여러 AI에이전트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AI에이전트는 팀원처럼 적합한 도구(예: Deep Research, Deep Think, Canvas, NotebookLM 등)를 선택한다. 그리고 사람처럼 환경 분석, 기획, 실행, 리뷰, 보고, 취합의 단계를 알아서 거친다. 마법이구나. 우리의 인생은 달콤하겠구나.
이제 AI가 우리 대신 업무를 한다. 실행 주체가 사람에서 AI로 교체되는 변곡점에 와 있다. 앤트로픽이 발표한 11개의 코워크 플러그인(Anthropic Claude Cowork with plugins)은 그것을 수용하라고 말하는 듯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번역 등의 생산성과 데이터 유관 업무 외에도 영업, 마케팅, 고객지원, 법무, 재무 등 다양한 분야에 당장 적용할 수 있다. AI가 못하는 것을 당신은 하고 있는가. 준비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