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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은 시간 아닌 돈…부모 불안이 ‘질 경쟁’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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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소영 기자

승인 : 2026. 02. 17. 11:10

대졸 이상 부모에서 효과 더 뚜렷
현장에선 ‘안정감 구매’ 심리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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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한 의대 진학 전문 학원 모습./연합뉴스
부모의 '경쟁 압력'이 자녀 사교육비를 끌어올린다는 실증 분석 결과가 나왔다. '좋은 대학-좋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성공 통로가 지나치게 좁다는 인식이 부모의 불안을 키우고, 그 불안이 30조원대에 육박한 사교육 시장을 떠받치는 동력으로 작동한다는 해석이다.

17일 학계에 따르면 한국개발연구원(KDI) 한성민 연구위원은 지난해 말 발간한 보고서 '사교육 의존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고찰 및 함의'에서 부모의 경쟁 압력과 사교육 지출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한국아동패널 설문 문항과 6807개 표본을 토대로 경쟁 압력 수준을 계량화한 뒤, 사교육 비용 변화와의 관계를 살폈다.

분석 결과 경쟁 압력은 사교육 '비용'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뚜렷하게 나타났다. 부모의 경쟁압력 점수가 1점 높아질 때 자녀의 사교육비는 2.9%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에서 말하는 경쟁 압력은 자녀의 탁월한 학업 성취와 사회적 성공에 대한 기대·열망, 치열한 입시 경쟁이 낳는 불안 등을 포괄한다.

현장에서도 체감은 비슷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학부모 A씨는 "요즘은 학원 '개수'로 경쟁한다기보다 같은 시간을 쓰더라도 어디에 넣느냐가 더 중요해진 느낌"이라며 "부모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안 한다'가 아니라 '비용을 올려서 효율을 뽑는다'가 된다. 아이가 엄청 뛰어난 걸 기대한다기보다 '최소한 뒤로 밀리지 않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솔직히 말하면 '학원을 더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게 아니다"라며 "중학교 올라가면 내신, 고등학교 가면 내신·수능·학생부가 한꺼번에 오고 대학은 간판으로 줄 세워지고 취업은 '스펙'이 기본값이 돼버렸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공부는 한계가 있으니 결국 돈을 더 써서라도 안정감을 사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주목할 점은 경쟁 압력이 학원 수나 사교육 시간 자체를 늘리는 방식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구에서는 경쟁 압력이 자녀의 학원 수와 사교육 시간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정과 이동, 학습 피로 등 물리적 한계로 '더 오래'는 늘리기 어렵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신 같은 시간이라도 더 비싼 프로그램, 고급 강좌, 촘촘한 관리형 수업 등 질적 수준을 높이는 선택으로 지출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학력에 따른 차이도 확인됐다. 특히 대졸 이상 부모 집단에서 경쟁 압력이 높아질수록 사교육비가 유의하게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사교육 시장은 이미 최대치에 근접해 있다. 학령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9조원을 넘어서며 4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간을 더 쓰는 사교육'이 아니라 '단가를 올리는 사교육'이 굳어질 경우, 가계 부담과 교육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 변화에 따른 '불안의 이동' 가능성도 경고했다. 보고서는 2025학년부터 적용된 고교 내신 5등급제 역시 지속적으로 추적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내신 변별력이 약화할 경우 대학이 학생부 세부 기록이나 수능 성적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평가 기준을 이동시킬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사교육 수요가 되레 자극될 수 있다는 우려다.

연구원은 사교육 의존을 개인의 선택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불안을 키우는 구조 요인을 함께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연구위원은 "'좋은 일자리' 취업 확률 10%, '좋은 대학' 입학 확률 4%라는 수치는 제한된 성공 경로와 기회의 불균형이라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존재함을 보여준다"며 "이런 현실에서는 자녀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 세대의 불안과 경쟁 심리가 극대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설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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