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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레드팀에 대한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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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1. 20. 17:47

스위스 에어 파산은 레드팀 기능 부재가 요인
개인 조직 정치서 '사전검증' 미작동은 부실 원인
정치 부패구조 만연, 레드팀 기능 작동시켜야
김명호
김명호(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스위스 에어'는 한 때 '날아다니는 은행'(Flying Bank)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스위스 은행만큼 안전하다는 뜻이다. 그런 항공사가 2001년 파산했다. 왜 그런 충격적인 사태를 맞이했을까.

1990년대 유럽 항공시장은 규제 완화로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스위스 에어는 헌터(Hunter) 전략을 세웠다. 자체 성장보다 유럽의 중소항공사를 공격적으로 사냥(인수)하겠다는 것이다. 경영난을 겪는 벨기에, 프랑스, 독일 등의 항공사를 마구 사들였다. 지주회사 이사진은 CEO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했다. 이사회는 스위스 정치권과 재계 최고 엘리트들로 구성돼 있었지만, 항공운송업 전문가는 없었다. 결과적으로 거수기 이사진이었다.

피인수기업 실사에서 부실 재무 상태가 드러났으나, 막대한 현금 등으로 빚을 메워주는 결정을 계속했다. 복잡한 재무 구조를 만들어 부실을 숨기려고까지 했다. 내부에선 위험한 현금 흐름을 여러 번 경고했으나, CEO는 '성장을 위한 고통'으로 치환했다. 2000년대 초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뒤늦게 CEO를 교체했지만 이미 선을 넘었다. 게다가 9.11테러까지 겹쳐 2001년 10월 2일 현금이 바닥나 전 세계 스위스 에어 항공기가 이륙하지 못하는 그라운딩(Grounding) 사태가 발생했다.

스위스 에어 파산 사례는 레드팀(Red Team) 즉 비판적 검증시스템의 부재가 어떻게 거대 기업을 무너뜨리는지 보여주는 교과서다. 레드팀은 미군이 작전계획 수립 시 우리 편이 간과한 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대항군 역할에서 발전시킨 개념이다. 굳이 연원을 따지자면, 1500년대 로마 가톨릭의 성인 추대 과정에서 후보의 약점과 품성, 평판 등에 대해 의도적으로 추대 반대 목소리로 공격하는 역할(가톨릭은 1983년 폐지)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대부분의 국가 정보기관이나 글로벌 대기업이 조직 내외부에 어떤 형태로든 레드팀을 운용한다.

흔히 레드팀을 쓴소리 전담부서 정도로 인식한다. 그리고 "응, 좋은 의견이네"라며 듣고 흘려버리는 게 수많은 조직의 현실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 우선 레드팀은 비판이 아니라 시뮬레이션이다. 적이나 경쟁사가 우리 전략을 알고 약점을 파고들 때를 전제로 대응하는 객관적 전술 행동이다. 그러니 방해꾼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스파링 파트너 겸 조력자이다. 또 과거 잘못을 들추는 감사가 아니라 미래 불확실성을 다루는 미래지향적이다. '규정을 지켰어?'를 따지는 게 아니라 '규정을 지켜도 망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런 기능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조직의 확증편향과 집단사고를 회피케 한다(집단사고는 집단최면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 실패 후 사후부검이 아니라, 시작 전 사전부검으로 치명적 결함을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조직 내부 논리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취약점을 캐낼 수 있고, 플랜 B, C의 타당성까지 검토한다.

스위스 에어가 헌터 전략 수립부터 파산까지 고비마다 레드팀 기능이 작동하고 반영했다면 파산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었거나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파산 2년 뒤 글로벌 회계법인(Ernst & Young)의 파산 분석보고서는'비판적 견제 기능(레드팀)이 마비된 리더십의 구조적 실패'로 결론지었다. 이사회의 헌터 전략 위험성 평가 능력 부족과 복잡한 항공 비즈니스에 대한 기술적 반박 능력 부재(전문가 레드팀 부재), 계획 이상의 투자에 대한 내부 감시 시스템 미작동, 이사회의 이너 서클화로 인한 불편한 진실 말하지 않기 등을 지적했다. 한마디로 '돈이 없어서 망한 게 아니라 그렇게 되기까지 잘못된 결정을 막을 시스템이 없어서 망했다'는 결론이다.

만약 레드팀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이미 시장에서 실패한 피인수회사의 구조적 적자를 해결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는 뭔가. 영업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낮은 현금 보유고 상태에서의 확장 정책이 위험하지 않는가. 실패했을 경우 출구 전략과 손절매 계획은 무엇인가. 경영진 계획을 제3자 전문기관에게 맡겨 교차검증을 하는 게 어떤가 등등.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이 나타났을 것이고, 개선안을 분별해 반영했으면 결과는 어땠을까.

레드팀이라는 비판적 사전 검증시스템은 대기업이나 정보기관, 군에서만 필요할까. 개인에게도 살아가면서 결정하고 판단해야 할 일들이 무수히 많다. 어떤 것들은 자신의 단기적 이익은 물론 삶 전체에 걸쳐 영향을 준다. 또 개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나 정책에서 과감한 결단이나 올바른 방향 또는 신념이라고 포장되는 것들도 많다. 그것들이 이벤트성이거나 인기몰이용일 가능성은 어떤가.

견제나 검증 없는 정치나 정책은 부실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를 감추거나 뒤로 미루기 위해 구조적인 부정부패가 등장한다. 요즘 언론에 터지는 정치인들의 공천 헌금, 황당한 갑질 행태, 의원 신분을 이용한 부당한 압력, 온갖 편법과 불법이 동원된 재산 증식 등의 의혹은 우리 정치와 사회에 이미 부정부패가 만연돼 가고 있음을 경고한다. 사전·사후 검증시스템의 부재는 대파국을 예고하고 있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김명호(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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