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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대로] 한중일 新삼국지, 확고한 외교 방향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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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1. 15. 17:57

최범
최범 객원논설위원
"천하의 대세는 나누어져 오래 지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 오래면 반드시 나누어진다. 세상에는 영원한 강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소설 삼국지 첫 문장은 긴 세월을 넘어 현재를 관통한다. 천하가 다시 갈라지며, 오랜 다자주의로 합쳐진 질서는 무너지고, 새로운 일방 질서는 아직 정제되지 않았다. 한국과 바다를 사이에 둔 일본, 대륙을 품은 중국은 마치 삼국지처럼 서로를 경계하며 각자의 생존법을 모색하고 있다. 위기와 기회가 혼재된 상황에 스스로를 굳건히 지켜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현재 국제정세는 다자주의가 후퇴하면서 일방주의·강대국 정치의 부활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미중 간 전략 경쟁이 구조적으로 고착되고, 경제가 곧 무기이자 안보인 시대가 왔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인권 등을 앞세운 가치동맹에 균열이 생기고, 국익과 거래 중심의 실용 외교가 강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대만해협·남중국해 긴장 등 상시적 지역분쟁 불안은 글로벌 경제·에너지·안보 위기로 확산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경제와 안보, 전쟁과 평화,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흐려지는 '불확실성의 시대'인 셈이다. 한국 같은 중견국은 전략 공간 축소에 따른 '줄서기' 압박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 있어야 한다"고 한 말이 무섭기까지 한 이유다. 힘의 시대, 패권 경쟁의 시대인 만큼 더욱 그렇다.

이 같은 혼돈 상황에서 동북아 정세를 살펴보면 삼국지와 흡사한 점이 많다. 우선 중국은 조조의 위나라와 비교할 수 있다. 군사력과 인구, 경제력 등 압도적 국력을 바탕으로 천하의 중심을 노린다.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과 산업을 앞세워 동북아 및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 한다. 빛과 재덕을 감추고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시대가 가고, 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이뤄낸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 시대에 들어섰다. 아직 천하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지만, 두터운 자원과 경제력으로 주변국을 견제·회유·압박한다. 희토류와 교역이 자주 무기로 이용되기도 한다. 다만 태평양 건너 저 멀리 미국과 한일 사이의 굳건한 동맹을 일거에 깨트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본은 손권의 오나라와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바다를 기반으로 한 해양 국가라는 점에서 수군을 건설하여 강과 바다를 향하여 세력을 확장한 오나라와 유사성이 있다. 2차 세계대전 패망 후의 각종 제약에서 벗어나 방위력을 확대하고, 집단 자위권을 명분으로 군사적 역할을 넓혀 가려고 애쓰고 있다. 동북아 정세의 핵심축이라는 자리를 차지하려는 속내를 항상 지니고 있다. 오나라가 유비의 촉나라와 동맹으로 삼국지 최대 전투인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한국과의 동맹을 통한 역내 영향력 확보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다만 역사적 과오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할 줄 모르는 편협성으로 인해 한국과 충돌의 소지는 여전히 존재한다. 오나라가 촉나라 땅을 슬그머니 차지해 발생한 '이릉대전(夷陵大戰)'의 가능성이라고나 할까.

한국은 이런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다. 유비의 촉나라처럼 땅은 좁은데, 위아래로 강국이 버티고 있다. 자원도 풍부하지 않다. 촉나라보다 더 불리한 점은 좁은 땅마저 둘로 나뉘어져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략적 외교의 선택 폭이 그만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촉나라 유비가 관우와 장비, 제갈량 같은 인재들과 함께한 것처럼 '인재(人材)'가 최대 강점이다. 단, 극한 대립이 아닌 통합이 관건이다. 첨단 제조업, 문화 콘텐츠, 혁신 DNA 등도 강점이다.

삼국지의 서사는 웅장하고 장대했다. 하지만 그 결말은 의외로 싱거웠다. 전쟁의 연속으로 위촉오 세 나라는 모두 소진했다. 결국 새로운 질서로의 이동 계기만 만든 셈이 됐다. 오늘의 세계 역시 과도기다. 특히 올해는 한중 정상회담, 13일 한일 정상회담, 4월 미중 정상회담,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 등 굵직굵직한 회담이 이어지면서 세계 정세, 특히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의 격랑이 예고되고 있다. 우리 외교의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미국과의 동맹은 늘 그랬듯이 기본 축이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가치보다 계산과 비용을 먼저 묻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냥 마구잡이 추종이나 줄서기가 아니라 국익과 실용 중심의 성숙한 동맹으로 재설정해야 할 것이다. 안보는 긴밀 협력, 경제·기술 영역은 최대한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있어 중요 영향력 국가 중 하나고, 경제 분야에서는 최대 교역국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온전히 기댈 수 있는 상대라기보다는 잘 '관리'해야 하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는 원칙을 확고히 하되, 경제 문제 등에서는 불필요한 충돌을 최소화하는 외교적 기술이 필요할 것이다. 일본은 '앞마당을 같이 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협력의 대상이지만, 역사문제라는 깊은 골이 늘 가로놓여 있다. 협력은 하되, 요구할 것은 분명히 요구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힘과 패권의 시대, 외교는 더 냉정하고 침착해야 하며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감정도, 이념도 아닌 국익과 실용이 기준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정상 외교 등 외교적 만남은 그때그때 한 장면에 불과하지만 그 방향은 오래 이어진다. 지금은 모든 게 갈라지려는 국면이어서 방향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합쳐질 때 설 자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확고한 방향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범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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