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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지경학적 전략과 국가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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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6. 01. 05. 18:01

지정학 넘어 경제가 국가핵심이익의 무기이자 목표
마두로 체포, 정통법 심각한 우려 등은 지경학적 전략의 현실화
공허한 분노나 애국심으론 냉혹한 지경학 질서에서 못 버텨
핵심이익 지키기 위한 국가 생존전략 다시 세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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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2026년, 국제관계 이해와 국가 핵심이익 전략은 지경학(Geoeconomics)적 관점이 중심이어야 한다. 지정학(Geopolitics)에 경제(Economics)를 합친 게 지경학이다. 경제 수단을 국가의 정치, 안보의 목표 달성을 위한 무기로 활용하는 현상 또는 이를 분석하는 학문으로 볼 수 있다.

그리 일반적 용어는 아니지만 국제관계 관점에서 개념이 나온 지는 꽤 됐다. 1990년 루마니아 출신 전략전문가인 에드워드 루트왁이 '지정학에서 지경학으로-분쟁의 논리, 상업의 문법' 기고문에서 국가 간 경쟁이 지정학에서 지경학적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군사적 수단보다 경제적 수단의 비중이 더 커진다는 의미다. 전통적인 지정학은 군사력과 영토를 중심으로 국제관계를 설명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관세, 공급망, 환율, 금융, 표준 등이 상대국을 겨누는 치명적 무기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출발과 미중의 격렬한 충돌은 명백한 지경학의 시대가 왔음을 알린다. 자유무역과 사실상 세계화의 종언,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보편적 관세, 미중의 상호 보복 및 제재 등은 지경학 시대의 선언이다.

과거의 세계화는 경제적 효율성이 최고였다. 그래서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지금은 경제적 상호의존이 곧 상대방을 타격하는 무기가 됐다. 세계화가 더 이상 안정된 질서가 아니다.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은 단순히 무역수지 개선을 위한 경제조치가 아니다. 상대국 산업 위축, 미국 내 공급망 구축, 궁극적으로 중국을 공급망에서 축출하려는 안보 전략의 하나다. 경제를 안보 관점에서 읽고, 안보를 경제의 지렛대로 해석하는 지경학적 통찰력이 국가 생존전략에 필수가 됐다.

대항하는 중국도 똑같다. 미중 대립은 군사적 긴장에서 경제적 충돌로 확산했다. G2의 지경학적 충돌은 서로 강온 전략을 선택적으로 구사하며 동맹국이나 주변 국가들에게 자기편에 서라는 강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국가 간 제재가 얽히고설켜 국제질서가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제 상식이다.

그런 선택적 압박은 우리 앞 곳곳에 널려 있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환율과 관세는 물론 통신 반도체 AI 등 기술 패권을 가를 표준 전쟁, 에너지 확보, 배터리와 전기차 공급망 재편, 안보 비용 부담 등등. 지경학적 전략을 마련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는 동력 상실을 넘어 산업 외교 안보의 복합위기로 갈 수도 있다. 한국은 지금 단순한 경제정책, 안보정책이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허위조작정보 근절을 내세운 한국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에 대해 미국 국무부는 공식논평을 통해 "미국에 본사를 둔 온라인 플랫폼들의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며, 표현의 자유를 저해한다"며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가 이익에 반한다면 타국 국내법에도 관여하고, 나아가 통상분쟁 가능성도 있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이 비판은 공교롭게 쿠팡 사태 와중에 나왔다. 쿠팡은 미국 상장 회사다. 개인정보 유출은 쿠팡이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워싱턴의 비중 있는 정치인들이 쿠팡 입장에서 거들기 시작한다. 한국에서는 국회 청문회나 일부 정치인들이 유튜브를 통해 본 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열을 올리는 것 외엔 별다른 조치가 없다. 정부의 여러 부처가 강력 조치를 경고하지만 그 강도가 어느정도일지는 가봐야 안다. 경제 이익을 위해 정치와 안보가 견제하고, 경제적 수단으로 상대방을 제재하려는 의도가 배어있다.

3일 새벽(현지시간)에 전격 단행된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습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체포 작전은 미국의 세계 전략에 지경학적 관점이 최우선인 점을 명확히 설명한다. 마약퇴치의 명분도 있지만 "우리는 오래전부터 되찾아야 할 석유를 되찾을 것이고, 엄청난 이익이 나올 것"(작전 뒤 트럼프 기자회견)이라는 언급은 너무도 지경학적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접수'하겠다는 얘기고, 석유 수출의 80~90%를 차지하는 중국에 대한 석유공급망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뜻이다. 경제와 외교안보가 어우러진 지경학이다.

우리는 이런 지경학적 전략 흐름에 대한 대응책을 갖고 있나. 우리 정치와 정치인은 지경학적 레버리지 확보에 무능력하거나 노력을 게을리했다. 한국말도 전혀 모르는 외국인 대표를 세워 놓고 그저 부르르 떨기만 하는 정치인들, 분노만 적당히 자극해 정신승리로 단결을 도모하는 가벼운 행위들, 환단고기가 국정에 등장하고 청와대 대변인이 설명해야 하는 현실들….

결국 국가 간 경쟁에서 냉혹한 지경학적 전략 없이는 어떤 이익도 지킬 수 없다. 혐오나 감정에 기반한 애국심으로는 지경학적 전략을 이길 수 없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정치인은 지금'방구석 여포'요, 정신승리의 선봉에 서 있다.

국내용 정치로는 지경학적 세계 질서에서 여지없이 튕겨 나갈 수밖에 없다. 한국은 더 이상 지경학의 수동적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나 글로벌 기업의 선택 폭만 좁아지게 된다. 국내 정치도 좋지만, 지경학적 전략이 생존전략 자체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김명호(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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