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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 정신이 위축된 근본 원인은 예측 불가능한 입법 리스크에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 상법 개정안 등 반기업적 성격의 정책들이 쏟아지면서 경영자들은 투자를 확대하기보다 사법적 리스크를 피하는 데 급급해졌다. 과거 미국 루스벨트 행정부 시절에도 정부의 과도한 간섭과 법적 불확실성이 자본의 파업을 불러왔으나, 이후 사법부가 입법부의 무리한 법안들을 견제하며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자 비로소 경제가 활력을 찾았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가면서 당시 경제학자들은 전쟁 수요가 갑자기 사라지면 그만큼 총수요가 갑자기 줄어들어 미국 경제가 불황에 빠져들 것으로 우려했다. 그러나 그런 불황이 오기는커녕 미국 경제는 활력이 넘쳤다.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만연했던 '체제 불확실성'이 사라지면서 '파업'을 하던 자본이 '투자'라는 생산 활동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지금 무역흑자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시장으로 돌아오지 않고 소위 서학개미들이 국내 증권시장을 떠나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것도 결국 근본 원인을 파고들면 한국 경제에 드리운 '체제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시장의 신뢰가 무너진 자리는 고환율과 자본 유출이 채우고 있으며, 이는 결국 서민들의 식탁 물가까지 위협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맥킨지 보고서는 한국경제를 마치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에 삶겨 죽는 개구리'에 비유한 것은 서서히 다가오기에 눈 뜬 채 당할 위험성에 노출됐다는 경고다. 그런 위험성이 바로 재정 포퓰리즘의 고착화다. 제임스 뷰캐넌이 '적자 속 민주주의(Democracy in Deficit)'라는 저서에서 지적했듯이,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선심성 예산을 살포하는 데는 능숙하다 보니 민주주의 아래 만성적자가 횡행한다. 정부는 본래 생산의 주체가 아님에도 막대한 적자 국채를 발행하여 인위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해 왔다.
이 과정에서 발행된 국채를 소화하기 위해 이자율이 오르면, 중앙은행이 이를 사들여 돈을 더 풀게 되고, 이 돈은 결국 부동산과 같은 자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가 가격을 폭등시킨다. 이는 성실하게 저축하는 사람들을 좌절시키는 부의 불평등을 초래하며, 결국 현세대가 미래 세대의 자산을 '법적으로 약탈'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프레데릭 바스티아가 경고했듯이, 정부가 오른쪽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는 것은 결국 왼쪽 주머니에서 빼가는 것일 뿐이다. 공짜 점심은 없으며, 무분별한 돈 풀기는 결국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이 되어 서민들의 지갑을 얇게 만든다. 현재 한국의 국가 채무는 1300조 원 시대를 앞두고 있으며, 연금 부채 등 광의의 부채를 합치면 이미 GDP를 상회하는 위험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이제 우리는 '재정준칙'에 근거한 경제 정책으로의 대전환을 선언해야 한다. 재정준칙은 국가 채무의 상한선을 법적으로, 혹은 독일처럼 헌법으로 명시하여 정치적 목적에 따른 무분별한 지출을 원천적으로 막는 장치다. 국회의 본연의 역할은 원래 왕의 무분별한 예산 사용을 감시하던 것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국회는 오히려 지역구 예산을 챙기기 위해 재정 팽창을 방조하고 있다. 재정 준칙이라는 제도적 제약 없이는 우리 경제가 서서히 끓는 물 속에서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활력을 잃고 L자형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노동시장의 변화도 절실하다. 강성 노조는 '회사가 있어야 노조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야 한다. 영국 리랜드 자동차나 한국의 신화조선소 사례처럼, 자본을 적대시하고 거위의 배를 가르는 식의 투쟁은 결국 일자리 상실이라는 비극으로 귀결될 뿐이다. 자본은 노동의 적이 아니라, 노동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동반자다. 국내에 더 많은 해외자본이 들어와 기업을 세우고 더 많아진 기업들이 서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스카우트 경쟁을 벌일 때 노동자의 처우도 크게 개선될 수 있다.
체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법치와 건전 재정의 원칙을 바로 세울 때, 청년들이 다시 야망을 꿈꾸고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는 경제 회복의 길이 열릴 것이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블랙 스완'이 아니다. 눈앞에 뻔히 보이지만 너무 느리게 다가와 간과하기 쉬운 '회색 코뿔소'의 위기라고 불릴 만하다. 이 거대한 코뿔소가 우리를 들이받기 전에, 재정준칙이라는 튼튼한 울타리를 세워야 할 때다.
재정준칙은 마치 항해 중인 배가 암초를 만나지 않도록 경로를 제한하는 '안전한 항로'와 같다. 정치적 욕심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배가 뒤집히기 전에, '재정준칙'이라는 법으로 단단하게 키를 고정해야만 우리 경제라는 배가 '잘사는 선진국'이라는 미래의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다.
김이석 논설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