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연혁 대신 사회의 시간에 초점
생활사·산업화 속 은행 역할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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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이 은행사박물관을 21년 만에 전면 개편해 다시 문을 연 '우리1899'를 방문했다. 전시는 '은행의 시작·성장·사람'이라는 세 축으로 꾸며졌다. 역사의 굵직한 변곡점마다 우리 금융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따라 걷는 방식이다.
입구 중앙에 놓인 360도 LED 조형물 '우리 타임스피어' 앞에서 해설을 시작한 허효주 사회공헌팀 과장(학예사)은 "은행의 역사를 특정 시점에 고정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흘러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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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서 맞은편에는 당시 회계 장부가 놓여 있다. 송도 사개치부법으로 불린 이 회계 방식은 거래 내용을 정일기와 장책으로 이중 기록하고 기호를 활용해 오류를 줄였다. 허 과장은 "근대 금융이 외국 제도를 그대로 옮겨온 결과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며 "이미 상인 사회에 축적돼 있던 질서 위에서 은행이 출발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곧 황실과 맞닿는다. 고종의 사진이 걸린 벽면을 따라 대한천일은행이 황실의 재정 지원 속에 성장해 온 흐름이 이어진다. 1902년 황실이 최대 주주가 되며 영친왕이 2대 은행장에 이름을 올린 장면도 사진과 함께 제시된다.
산업화 이후 구간에 들어서면 전시의 분위기는 한층 생활 가까이로 내려온다. 신성일·엄앵란 부부가 등장하는 '안심예금' 팸플릿은 금융이 일상 속으로 스며들던 시기를 보여준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국면에서 한일은행이 포항제철소 건설에 20억원을 대출한 기록이 등장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과 함께 배치된 자료들은 산업화 가운데서 금융이 맡았던 역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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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의 마지막은 '사람'이다. 소설가 박경리는 1954년 상업은행 용산지점에서 근무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은행 사보에 실은 글을 계기로 문단에 데뷔했다. 독립운동가, 기업인, 스포츠계 인사들 역시 은행원이라는 공통된 이력을 남겼다. 전시는 이들을 성과가 아닌 '지나간 삶'으로 다룬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1899는 과거를 기념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금융의 공공적 의미를 다시 묻는 장소"라며 "금융의 역사를 제도나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온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