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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디지털 벽 허무는 ‘IT 도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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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람 기자 | 전재민 인턴 기자

승인 : 2025. 08. 11. 13:43

디지털 격차 해소 위한 '약자와의 동행' 정책
디지털안내사, 서울 310여 곳 순회
디지털약자, 키오스크 주문·앱 설치·표 예매 등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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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역 인근 한 영화관에서 한 어르신의 키오스크 사용법을 '디지털안내사'가 돕고 있다./전재민 인턴 기자
"이게 맞나, 뭐가 이리 복잡해…에휴, 그냥 물어볼까"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역 인근의 한 영화관. 노정순씨(76)는 주름진 손가락으로 키오스크 화면을 조심스럽게 꾹꾹 눌렀다. 화면 속 글씨는 크지만, 단계마다 바뀌는 버튼이 헷갈려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던 그는 직원 쪽을 힐끔 바라봤다.

그 때 '디지털 안내사'라고 적힌 주황색 조끼를 입은 김용우씨(45)가 다가와 "선생님 영화 예매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었다.

노씨가 자리를 내주자 김씨는 "영화 시간 맞는지 확인하시고, 결제 방법 고르시고, 적립 여부 누르신 뒤 결제하기 누르시면 된다"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예매 과정이 하나씩 채워질 때마다 노씨의 얼굴에는 안도와 설렘이 섞인 미소가 번졌다. 마지막 결제 버튼을 누르자, 마치 오랜 숙제를 끝낸 듯 환하게 웃었다.

김 안내사는 서울시가 2022년 9월부터 운영하는 '디지털 안내사'다. 디지털 안내사는 고령화 시대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약자와의 동행' 정책의 핵심 사업으로, 모바일 앱 설치부터 키오스크 주문, 택시 호출까지 시민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돕는다.

올해 하반기에는 김 안내사를 포함해 125명(7기)이 활동한다. 평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2인 1조로 지하철역과 복지시설, 공원 등 서울 310여 곳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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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역 인근의 한 영화관에서 '디지털안내사가' 한 시민에게 모바일 앱 사용법을 안내하고 있다./ 전재민 인턴 기자
◇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어요"
노씨는 "요즘 카페나 식당, 어디를 가도 키오스크가 많다. 한참 헤매다 보면 뒤에 줄이 길어져 눈치가 보인다"며 "직원들은 바쁘다며 기계를 쓰라고만 할 때가 많은데, 이렇게 먼저 다가와 도와주니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김 안내사는 "카카오톡 보내기, 문자 확인, 와이파이 연결 같은 기본 기능도 어려워하는 어르신이 많다"며 "한 번은 기후동행카드를 충전하려던 어르신이 카드 이름을 몰라 손으로 '∞'모양을 그려 보이신 적이 있다. 혜택과 기능은 알지만 방법을 몰라서 쓰지 못하고 계셨던 거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령화 시대에 디지털 지식을 전하고, 편리함을 누리게 해드리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강조했다.

안내사 덕분에 자신감을 얻은 시민도 있다. 이성열씨(65)는 "세상이 험하다 보니 앱 설치도 겁나고, 휴대폰 가게에선 대충만 알려주는데, 오늘은 디지털 안내사가 친절하게 차근차근 알려줘서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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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디지털안내사'로 활동 중인 정현주씨(왼쪽)와 이예교씨(오른쪽)가 한 시민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재민 인턴기자
디지털 안내사의 도움을 받아 직접 안내사가 된 이도 있다. 마로니에공원에서 활동 중인 이예교씨(70)다.

이 안내사는 "먼저 다가가 말동무가 돼주고, 모르는 것을 친절히 알려주는 디지털 안내사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노년에 갈 곳도 마땅치 않은데,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생활비도 벌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공원에서 이 안내사는 사진을 찍고 있던 김춘옥씨(67)에게 다가가 "스마트폰 사용 도와드릴까요?"라며 먼저 말을 건넸다. 간단한 기능을 설명한 뒤에는 건강을 묻는 대화가 이어졌고, 두 사람의 얼굴에는 서서히 환한 웃음이 번졌다.

안내사 정현주씨(63)도 "이 일은 도움을 주며 세대를 잇겠다는 사명감이 제일 중요하다"며 "단순히 기기 사용법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세월을 함께하는 사람으로서 말동무도 돼드리고, 생활 전반의 불편을 덜어드린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어르신들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해 디지털 안내사 운영은 물론, 디지털배움터와 동행플라자에서 AI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앞으로 AI 교육 비중을 점차 늘리면서 기존 디지털 활용 교육과 병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아람 기자
전재민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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