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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부분의 정부들은 이런 구축효과가 발생해서 민간에서 생산과 고용 등이 줄어드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대개 발행된 대량의 국채들을 화폐화(monetization of debt)한다. 즉,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이고 그 결과 뭉칫돈이 시중에 풀려나간다. 문재인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뭉칫돈이 경제에 풀려나가는 것은 자산 가격이라는 풍선에 바람을 넣는 격이다. 부동산가격 억제를 위한 규제가 시도되지만 그런 규제로 한쪽 풍선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오를 뿐 집값을 잡히지 않았다. 당시 다주택자들에 대한 중과세도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를 촉발시켜 특히 서울 강남의 집값을 폭등시켰다.
이재명 정권이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서울집값이 치솟자 정부는 지난달 27일 집값이 급등하는 수도권과 규제지역에 대해서는 6억원 이상의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는 규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 긴급 극약 처방을 내놓았다. 소득, 주택가격과 상관없이 주택담보대출 총액을 제한하는 것은 전례가 없었다고 한다. 시장의 거래는 이 거래로 인해 거래상대방들이 모두 더 만족하는 결과를 얻기에 이루어지고 이런 거래를 통해 부가가치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비록 거래대상이 부동산이라고 해도 시장경제에서는 이런 금지 조치는 비정상적이다. 실수요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긴급처방을 통해 한쪽에서는 부동산 쪽으로 돈이 풀리지 않게 대출을 죄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31조8000억원 규모의 2차 추경안을 통해 뭉칫돈을 풀 계획이다. 세수가 더 많아지는 상황이 아니어서 국채의 발행은 불가피한데 이 국채들이 화폐화되면 시중에 뭉칫돈이 풀려나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이 새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경기를 살리려는 명목 아래 통화량을 시중에 공급하면" 규제를 해도 집값을 잡을 수 없다고 현재의 정책적 딜레마를 요약하는 발언을 했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돈을 풀고 또 집값을 잡기 위해 대출을 죄는 것이 잘 조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를 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묘안이 제안되고 있다. 풀린 뭉칫돈의 흐름을 부동산에서 증시로 돌리라는 조언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실제로 부동산 대출 규제가 강화된 이후 부동산으로는 자금 유입이 둔화되는 반면 증시로 자금이 이동하는 소위 '머니 시프트(money shift)'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이런 머니 시프트를 통해 고질적인 부동산 쏠림 현상을 해소하고 기업 투자를 유도하여 '투자 다변화, 부동산 정상화, 기업 투자 활성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기대까지 하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돈줄의 변화와 새로운 뭉칫돈의 투입을 구별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는 마치 물길을 바꾸는 것과 물의 수위를 위험하게 높이는 것을 구별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생산성의 증가가 동반되지 않았는데도 새로운 뭉칫돈이 증시로 유입해서 증권의 가격이 오르면 환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이 깊어진다. 증시에 낀 거품도 언젠가 터진다. 이런 머니게임으로 거품이 크게 부풀수록 크게 터진다. 우리는 미국에서 부동산 버블이 발생해서 국제금융위기로 비화되기 이전에 닷컴 버블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 이전에는 미시시피 버블도 있었다.
국채 발행과 화폐 조작을 통해 경제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이런 말에 누군가가 "그럼 손 놓고 있으란 말이냐"고 항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다. 정부가 돈줄을 증시로 몰아가는 대책에 몰두하기 이전에 가장 먼저 집중할 일은 기업들이 열심히 '장래성이 보이는 소를 열심히 키우도록'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기업들이 소를 열심히 키우게 할 방도는 이미 많이 나와 있고 실제로 이를 실천해서 성공한 나라들의 사례들도 쌓여 있다. 우선 정부와 여당이 상법개정, 노란봉투법 강행 등 오히려 기업들이 소를 키울 의욕을 꺾는 입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