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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로] 장미대선에 돋친 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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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기자

승인 : 2025. 04. 25. 09:16

2007년 3월 13일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는 "7% 경제성장으로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어 7대 경제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로 승리로 이끈 '7·4·7 전략'을 꺼내든 순간이었다. 저성장과 경기침체에 지친 유권자에겐 복잡한 경제정책 보다 숫자로 압축한 솔깃한 약속이었다.

장미대선으로 불리는 6.3대선이 4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주요 후보들의 '숫자놀음'이 시작됐다. 이번 대선 경제분야 최대 이슈인 인공지능(AI) 분야를 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00조원 투자 구상을 밝히자 한동훈 국민의힘 후보가 200조원 투자 카드를 꺼내드는 등 숫자 경쟁이 뜨겁다.

가장 적극적으로 숫자를 내민 건 이재명 후보다. 그는 2030년까지 '3% 잠재성장률, 세계 4대 수출강국,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달성'을 목표로 하는 이른바 '3·4·5성장전략'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여기에 더해 "주가지수 5000시대를 열겠다"는 통 큰 배팅도 했다. 3년 전 대선에서 꺼낸 "경제규모 세계 5위, 국민소득 5만달러, 주가지수 5000 달성"이라는 '555선언'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실현 가능한 정책만 공약하면 당선될 수 없다"는 건 선거판에서 공공연한 사실로 통한다. 그렇게 대선판에 올라오는 숫자들은 부풀려질 대로 부풀려져 달성 가능성이 없는 수준의 수치들로 채워지게 된다.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의 대선 승부 속성상 어쩔 수 없다는 게 선거캠프 사람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문제는 혹독한 후과(後果)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유권자들이 숫자공약에 기만당해 후보가 내놓은 수치를 믿지 못하는 불신에 빠지게 되는 부작용이 대표적이다. 2002년 대선 TV토론에서 이회창 후보가 경제성장률 6%를 내세우자 노무현 후보가 7%를 하겠다고 받아친 것은 "정치인의 숫자는 믿을 수 없다"는 인식에 뿌리를 내리게 한 상징적 장면이다. 달콤한 숫자를 내세워 당선되더라도 '올해도 못지킨 공약'이라는 꼬리표가 임기 내내 이어져 정권에는 짐이 되고, 대통령 리더십도 깎아먹게 된다.

18년 전에도 '747'은 경제현실과 동떨어진 공약(空約)이라는 지적이 많았지만, 경제 성장에 갈증을 느낀 유권자들은 이명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대통령 취임 직후엔 "당장 7%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없더라도 7% 성장을 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아야 한다"고 말머리를 틀었다. 7% 성장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고백이었다.

이번 대선이 끝난 뒤엔 "3%라고 하니까 진짜 3%인줄 알더라"라며 숫자공약을 뭉개는 장면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장미대선의 꽃향기에 취하기 전에 공약이란 줄기에 돋친 가시부터 꼼꼼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이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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