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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점점 산으로 가는 이사의 충실의무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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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2. 1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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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한국형 충실의무의 개념

작년 12월 1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주재 상법개정안 토론회(정책 디베이트 Ⅱ)가 열렸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에 대한 참석자들의 공통된 인식은 합병, 분할과 이중상장, 포괄적 주식 교환·이전, 자기주식 취득과 처분, 신주·전환사채 발행, 이익배당, 신사업 진출, 계열사 지원, 임원 보수, 자산 매각 등 통상적인 이사회 결의에 있어 총 주주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아야 하며, 만약 일부 주주가 피해를 본다면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제정한 '표준이사회규정'상 이사회 결의사항은 총 69건, 99개 조문에 이르는데, 이들 결의사항을 검토함에 있어 이사들이 모든 주주의 이익을 도모하라는 것이다.

◇충실의무 개념의 글로벌 스탠더드

충실의무 개념을 이처럼 폭넓게 확장해 법제화한 나라는 없다. 이사의 충실의무란, 이사가 그 지위를 이용해 자신이나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아야 할 의무다. 이것이 충실의무 개념의 글로벌 스탠더드다.

그런데 한국만은 충실의무의 개념을 무한 확장하여 이사의 모든 행위를 통제하는 의무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가 작금의 상법 개정론의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이사는 모든 행동에 있어 모든 주주로부터의 소제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사의 위법행위에 대한 소에 대해서는 회사가 소송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 이사 개인의 비용으로 3~5년 걸릴 수 있는 소송에 응하여야 하고, 결국에는 승소하더라도 소요비용과 정력낭비는 엄청난 피해로 귀결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이사가 적극적인 경영행위를 할 수 있을까. 이미 한국의 이사들은 걸면 걸린다는 배임·횡령죄와 중대재해처벌법 등 과잉입법으로 인한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불완전 계열회사 간의 문제는 자본시장법에서 해결해야

상법 개정 논의의 출발은 본래 불완전 자회사 간의 주식교환 또는 이전, 합병, 분할 등 리밸런싱(구조조정) 문제에서 비롯됐다. 완전(100%)모자회사가 아닌 불완전한 자회사 간, 또는 불완전한 자회사와 모회사 간의 구조조정 시에는 양사에 소액주주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소액주주 보호가 문제 된다. 특히 하나의 그룹 소속 두 회사 간의 가치평가가 문제되는데, 이것이 바로 합병비율 또는 주식교환비율 문제다.

전혀 자본관계가 없는 두 회사 간의 합병 등은 상호 간의 치열한 협상을 통하여 정해지므로 문제가 없다. 합병비율 문제는 자본시장법 문제이므로 이 법에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간편하고 효과적이다. 상법에 이사는 회사 외에 모든 주주(또는 총 주주)에게도 충실의무를 부담한다는 식으로 상법을 개정해서는 구체적 청구권을 확정하기 어려워 소액주주들이 소송을 해도 배상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민주당과 소액주주 연대는 '닥치고 상법개정'을 주장한다.

◇상호 간에 특별한 자본관계가 있는 회사 간의 구조조정 문제

일본 회사법은 이사의 충실의무와 관련하여 한국 상법과 조문구조가 거의 같다. 한국이 일본 상법을 계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일본은 회사법 개정 논의가 전혀 없을까?

도쿄고등재판소 2023년 9월 28일 판결을 보자. 이 판결에서 상호 간에 특별한 자본관계가 있는 회사 간의 구조조정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는 불완전 계열회사 간의 구조조정이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도쿄고등재판소는 이 판결에서 "상호 특별한 자본관계가 있는 회사 간의 주식교환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공정하다고 인정되는 절차에 따라 해당 주식교환의 효력이 발생한 경우에는 해당 주식교환을 승인하는 주주총회의 결의는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회사법 제831조 제1항 제3호의 '현저히 부당한 결의'에 해당하지 않으며, 해당 주식교환도 무효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해 피고 회사 승소판결을 했다.

이 사안에서도 역시 주식교환비율의 공정성이 문제됐다. 당해 회사의 주주총회에서 이건 주식교환계약 승인에 관한 의안이 73.30%의 찬성으로 가결되었지만, 일부 주주가 이 승인 결의가 특별이해관계인의 의결권 행사에 의한 현저하게 부당한 결의에 해당하는 등 무효원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본건 주식교환 무효의 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해 위 고등재판소는 원심인 도쿄지방법원 2022년 3월 24일 판결을 인용하여, "상호 특별한 자본관계가 있는 회사 간에 체결되는 주식교환계약에서는, 주식교환계약의 당사자 회사간 및 해당 회사와 그 소수주주 간에 이해상반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① 독립된 제3자 위원회나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등 의사결정 과정이 자의적으로 되는 것을 배제하기 위한 조치가 강구되었고, ② 주주의 판단의 기초가 되는 정보로서 본 건 주식교환의 내용, 목적, 그 교섭 및 의사결정 과정 등에 대한 충분한 정보공개가 이루어진 후, ③ 적법하게 주주총회에서 승인되는 등 일반적으로 공정하다고 인정되는 절차에 의하여 주식교환의 효력이 발생한 경우에는… 해당 주주총회에서의 주주의 합리적인 판단이 방해받았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주식교환에서의 주식교환비율은 공정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① 독립된 제3자 위원회나 전문가의 의견과, ② 충분한 정보공개, ③ 주주총회에서 승인이 있었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특별한 사정'은 주장하는 자가 증명하여야 한다.

◇더 이상의 상법 개정 불필요

불완전 자회사와의 관계에서 소액주주에게 불공정한 대우가 문제인데, 그런 사유가 있으면 한국법 아래서도 위 일본 판결처럼 소를 제기할 수 있고, 그 소가 정당하다면 구제받을 수도 있다. 이사는 이미 상법상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부담하므로 더 이상의 상법 개정은 불필요하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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