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칼럼] 규제와 진흥이 대척인가?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biz.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813010007165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8. 14. 06:00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우리나라 원자력은 1955년 한미원자력협정과 더불어 시작됐다. 원자력을 최초로 시작한 행정부는 교육부였다. 1958년 3월 원자력법이 제정·공포됐으며, 1959년 1월 원자력원이 개원했고 1967년에 원자력청으로 개편됐다. 원자력청이 과학기술처와 한국원자력연구소로 분리되면서 행정조직과 연구조직으로 나뉘었다. 이후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동력자원부 원자력발전을 담당하는 부서가 생겼고, 이는 다시 상공부와 합쳐져 산업통상자원부가 됐다. 과학기술처와 산업자원부의 양대체제가 진행되다 과학기술처에 원자력연구기능은 남겨두고 규제기능을 분리해 현재의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됐다.

언제부터인가 원자력연구와 원자력발전은 '진흥'으로 불리우고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수행하는 원자력안전규제는 '규제'로 불리우기 시작했다. 국무총리 산하의 비상설위원회였던 원자력위원회도 원자력안전위원회라는 직할기구가 탄생하면서 원자력진흥위원회라는 간판으로 바꿔 달았다. 그러면서 진흥과 규제를 서로 대척점(對蹠點)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누가 언제부터 이런 이해를 전파했는지 알 수 없지만 누군가의 계략에 걸린 것이 아닌가 싶다.

진흥의 반대는 '퇴보'다. 규제가 아니다. 규제의 대척점에도 진흥이 있지 않다. 대척점에는 '사업'이 있다. 사업자가 규제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원자력계에서는 규제와 진흥을 대비시켰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US NRC)는 '규제독립성'을 설명하면서 다른 사회로부터의 '격리(Isolation)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굳이 명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그것이 위원회 차원인지 아니면 산하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차원인지 아니면 거기서 높은 자리에 있는 어떤 개인의 의견인지 알 수 없지만 원자력 안전규제를 원자력 진흥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격리해 왔다. 그래서 마치 규제자는 진보의 활동에서 빠져야 한다는 식의 자세를 취하게 됐다. 규제요원이 원자력학회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마저도 막아서는 기관장도 나오게 됐다.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고립시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의 안목이 외국 규제기관이 주는 정보에만 제한되고 국한돼 세상을 자기 시각으로 볼 수 없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당장은 독립적인 규제 행정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규제위원회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규제든 사업이든 진흥되어야 하는데 규제는 굳이 진흥에서 빠지려고 하는 것이다. 그 결과 규제자가 최신 기술로부터 격리되고 사회의 다른 부분의 발전에 둔감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원자로형이 개발되고 있을 때, 이와 관련한 법과 제도를 미리 만들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기술적 진보를 저해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어떻게 규제가 사업과 완전히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최근 미국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압도적 다수결로 'ADVANCE(Accelerating Deployment of Versatile, Advance Nuclear for Clean Energy)'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청정에너지를 위해 다양한 첨단원자력의 조속한 전개'를 뜻하는 것으로 지금 개발되고 있는 다양한 SMR(소형모듈형원자로)의 보급을 촉진하자는 것이다. 법안은 미국의 리더십 회복, 새로운 원자력 기술개발 및 배치 가속화를 위한 규제개선, 원자력발전협력 기회확대, 핵연료주기, 공급망, 인프라 및 인력지원, NRC의 효율향상을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놀랍게도 상당부분이 안전규제에 대해 주문하고 있다.

NRC의 국제적 역할, 인허가 수수료 감면, 비발전노형에 대한 인허가, DOE 및 중요 인프르 부지내 실증인허가, 브라운필드에 대한 규제, 신규원자로 통합허가 가속화, 외국법인 인허가, 선진핵연료 개발 및 인허가, NRC 효율성향상 등이 모두 규제기관에 관한 사항이다. 제목으로 보면 진흥인데 내용은 규제가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대척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규제와 진흥이 대척(對蹠)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은 누군가의 음모에 의한 세뇌처럼 보인다. 왜 그 알량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