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주인공 세워 불교 교리 설명한 경전
전재성 회장 능엄경과 능엄주 원문도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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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22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특히 현대인과 같은 합리주의 사고를 기반으로 한 고대 그리스인 엘리트들에게 무아(無我)·윤회·열반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영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밀란다(그리스어로 메난드로스) 왕의 질문이란 뜻의 경전인 '밀란다왕문경(밀란다팡하)'은 그리스인 출신 인도 왕이 질문하고 인도 고승인 나가세나(나선) 스님이 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밀란다 왕은 처음 불교를 접하는 현대인이 할 법한 질문을 주제별로 던집니다. 그러면 나가세나 스님은 이에 대해 비유로서 맞받아치고 상대방의 이해를 돕습니다.
예를 들어 밀란다왕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가세나는 '농부는 씨를 뿌리면 곡식이 자란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비유로 태어남의 원인을 안다면 다시 태어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답합니다. '업보가 있는지 보여줄 수 있는가'에 대한 밀란다 왕의 질문에 '아직 맺지 않은 열매에 대해 보여줄 수 없지만 열매가 존재하듯이 업보는 볼 수 없지만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밀란다팡하에서 다루는 논의는 이처럼 불교 교리 전반에 걸쳐 있습니다. 실존하는 밀란다 왕과 나가세나 스님의 기록이라기보다는 당대의 교리 논쟁을 통해 정리된 불교 이론을 가상의 인물 입으로 설명하는 논서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미얀마인들은 이 경전을 빠알리성전에 넣을 정도로 높게 평가했습니다. 근현대에 최초로 밀린다팡하를 동방성서에 포함시켜 영어로 번역한 리스 데이비드도 '의심할 바가 없는 인도의 걸작'이라고 표현했죠. 그만큼 초기 불교 사상을 잘 집대성한 책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밀린다팡하는 초기 불전 역경으로 유명한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이 번역했습니다. 2023년 하반기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1년에 걸쳐 빠알리원전(트렝크너본 PTS)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것입니다. 신국판 총 832쪽 분량에 1188개에 이르는 상세한 주석이 달렸습니다. 특히 불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교열에 직접 참여해서 일반인도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쓰였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이 책 출판을 후원한 운강 최훈동 거사는 발간사를 통해 "불교 사상의 핵심 주제들이 망라된 밀린다팡하는 불교를 현대적으로 이해하고 통합적 시각으로 이끌 훌륭한 안내서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습니다. 소암 이중원 거사는 추천사를 통해 "이 책은 서구 교육을 받은 우리가 질문했을 법한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며 '현대인을 위한 불교 입문서'라고 평가했습니다.
전재성 회장은 밀란다팡하와 함께 '슈랑가마다라니(능엄주)'와 '수능엄경(능엄경)'도 번역해 출간했습니다. 밀란다팡가가 불교 입문서라면 능엄주와 수능엄경은 불자(불교 신자)를 위한 '신행 도우미'라고 할 수 있죠.
산스크리트어 슈랑가마(수능엄)은 '일체의 마군들이 부수지 못하는 고귀한 삼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수능엄경은 부처님의 제자인 아난 존자가 여인의 주술로 인해 파계할 위기에 처하자, 부처님이 삼매의 힘으로 구원하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확고부동한 삼매를 닦는 법을 가르치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능엄주로 잘 알려진 슈랑가마다라니는 수행자를 보호하는 가피력이 있다고 해서 여러 사찰에서 널리 독송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다라니의 원뜻을 아는 이는 적은 편이죠. 능엄주나 능엄경은 분류상 밀교경전에 속합니다. 그러나 여래장(如來藏) 사상을 담고 있고 선정(禪定)을 닦는 것을 내용으로 하기에 선종 사찰에서도 중요하게 봤던 다리니와 경전입니다.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성철스님만 해도 능엄주 독송을 적극적으로 권했을 정도였죠.
만약 사찰에서 능엄주를 외고 계신 분이라면 꼭 읽기를 권해드립니다. 불보살, 팔부중생, 인도 신 등 모든 이들이 화엄성중이 돼서 함께 하는 이 다라니는 불교란 종교의 폭넓음과 문화적 뿌리를 알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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