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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비슷한 사례가 2500년 전 아테네에도 있었다. 32년간(BC 461~429) 아테네 문명의 황금기를 이끈 불세출의 정치지도자 페리클레스(BC 495~429) 때의 일이다. 그는 이혼한 전처와 함께 25년 연하의 여성과 한집에서 살았다. 그 여성은 이방인 출신 아스파시아(Aspasia BC 470~428)다. 그녀를 둘러싸고 항간의 입방아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에 딱 좋은 조건을 모두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녀가 귀족들을 상대로 비천한 일을 하던 불경스러운 여인이었다거나 유곽(遊廓)의 마담이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아테네의 동맹국 사모스와 밀레토스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다. 페리클레스가 밀레토스 편을 들었다. 그러자 아스파시아가 밀레토스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사실은 밀레토스 편을 들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정적들은 이를 모르는 척하면서 페리클레스를 맹공했다. 아테네판 국정농단 사태로 몰고 간 것이다. 그들은 아스파시아를 불경죄(不敬罪, Impiety)로 고발하였다. 그러나 추첨으로 뽑힌 501명의 배심원으로 구성된 아테네 시민법정은 그녀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사실상 아테네 시민들이 아스파시아에게 죄를 묻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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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잘 아는 페리클레스는 다음 해 선거를 걱정해야 했지만, 끝까지 아스파시아를 감쌌다. 아테네 시민들은 더 이상 아스파시아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장인의 사상 문제를 이유로 아내가 공격당하자 "그럼 이혼이라도 하라는 말이냐"고 받아쳤을 때 국민들이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과 일맥상통한다. 또 한 가지, 흔히 여성들이 남편을 가리켜 농담 삼아 "애를 하나 더 키운다"고 말한다. 그 "애" 속에는 국가 지도자도 포함된다. 이 말은 '아무리 강해 보이는 국가 지도자라고 해도 지친 마음을 편하게 기댈 모성(母性, Maternity)이 필요하다'는 뜻을 내포한다. 어쩌면 필부들보다 국가 지도자에게 더 절실할지도 모른다.
이제 공은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대다수의 국민은 대통령의 사과를 기대한다. 자존심 강한 대통령이 사과할지 안 할지, 그리고 사과한다면 어느 정도 수위일지 우리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광화문 네거리에 거적을 깔고 무릎 꿇어 사과하더라도, 야당은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밖의 국민들은 어찌해야 할까? 설사 대통령의 언급이 성에 차지 않더라도, 그리고 김건희 여사의 처신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재발 방지 약속만 확실하다면, 2500년 전 아테네 시민들의 현명함을 우리도 본받으면 좋지 않을까? 명품 가방 때문에 국사다망(國事多忙)한 대통령이 마음을 편히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언덕을 흔들어서 야당을 제외하고는 우리 국민에게 무슨 득이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한상율 (전 국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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