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를 관행적으로 나눠 먹는 이른바 '연구비 카르텔' 척결이 명분이다.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삭감 이유에 대해 "비효율적인 R&D 예산 요소들이 누적돼 왔고, 코로나 팬데믹, 일본의 반도체 소·부·장 수출 규제 등으로 급격히 늘어난 예산 조정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예산안 발표 후 과학기술계에서는 충격 속에서 격한 불만이 노출되고 있다. 기초연구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대학의 연구 여건이 악화되고, 정부 출연기관은 최소한의 운영비와 비정규직 인건비조차 마련할 수 없어 실직 사태가 불가피한 형편이다.
반면 '외교·통일' 분야가 19.5%, '보건·복지·고용' 분야가 7.5% 늘어나는 등 12대 예산 분야 대부분이 늘어났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한 '복지·토건 예산'은 늘어난 반면 국가의 미래성장동력과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R&D 예산은 1991년 이후 33년 만에 대폭 삭감됐고 정부 총지출 대비 R&D 투자비중은 21년 만에 처음으로 3%대로 떨어지게 됐다. 재정이 어렵다지만, 국가의 지출 우선순위에서 과학기술을 맨 끝자리로 밀쳐낸 것이다. 특히 '중기재정운용계획'에서도 2023~2027년 정부 총지출 연평균 증가율을 3.6%로 제시하면서, R&D 지출은 12대 분야 중 가장 낮은 0.7% 증가율을 제시했다. 앞으로 5년간 R&D 예산의 동결을 기정사실화했다. 과학기술계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미중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첨단기술전쟁으로 천문학적인 R&D 예산을 쏟아붓는 흐름과는 정반대다. 예산을 줄여 기초과학을 죽이는 것은 사상누각과 같다. '선거용 토건 사업' 대신 국가 미래를 책임질 R&D 예산을 칼질하는 근시안적 예산편성을 전면 재검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