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 발표는 이 부회장이 출소한지 11일 만에 긴박하게 이뤄졌다. 살이 13KG 가까이 빠져 수척해진 이 부회장이 13일 서울구치소를 나서자마자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으로 달려간 것을 보면 그 역시 마음이 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이 지난 1월 재수감돼 경영에서 손을 놓은 207일, 세계 반도체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갔다. 경쟁사인 대만 TSMC는 올해부터 4년간 약 1300억 달러(약 152조원)을 투입해 세계 각지에 10개 공장을 짓는다는 계획을 밝혔고, 미국의 인텔은 삼성전자와 TSMC의 영역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재진출을 선언했다.
삼성의 반도체는 선대들이 이룬 유산인 만큼 이 부회장이 지키고 더 키워나가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 회장이 1983년 도쿄선언을 기점으로 일군 국내 반도체 산업은 아버지인 고 이건희 회장 시절 D램과 낸드플래시 세계 1위로 꽃을 피웠다. 출범 당시 일본 등으로 부터 비웃음을 샀던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삼성을 일류기업으로 키웠고, 대한민국 수출의 20% 가량을 담당하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성장했다. 선대의 열매를 이어가야하는 이 부회장의 책임감이 클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을 둘러싼 환경도 척박하다. 여전히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남은 두 개의 재판도 치러야 한다. 세계 경제는 투자대비 결과를 확신할 수 없을 만큼 불확실성이 크다.
하지만 이 부회장에게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 우리 사회가 보다 더 윤택해지도록 하고 싶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지난해 5월 6일 이재용 부회장이 국민들 앞에 머리를 숙이며 한 말이다. 이 부회장이 꿈꾸는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갈 시간이 지금 이 부회장 앞에 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