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의 6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중동지역은 세계 무기시장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 마킷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2018년 77억 달러 규모의 무기구매 계약을 체결해 중동지역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사들인 나라가 됐으며,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카타르 역시 무기구매로는 세계 10위권 내에 들 만큼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런 중동지역에서 최근 중국·러시아산 무기구매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사우디와 UAE는 지난해 중국산 무기를 각각 4000만 달러(약 455억원) 어치씩 사들였다. 미국산 무기 거래액과 비교하면 여전히 적지만 예년 대비 크게 증가한 수치다.
UAE는 또한 중국기업과 합작해 무기를 개발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지난 2월 중국 최대 방산업체인 노린코(NORINCO)와 UAE 방산업체 인터내셔널골든그룹(IGG)은 합작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두 기업은 아부다비에 개발 시설을 세우고 중국인과 UAE인 엔지니어들이 협력해 무기와 훈련장비 등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 합작회사의 첫 번째 사업은 감시뿐만 아니라 공격 기능까지 수행할 수 있는 무인기(드론) 개발이 될 것이라고 관계자가 밝혔다.
러시아 역시 UAE에 미사일 시스템을 수출하는 한편 사우디에는 현지에서 무기 제작을 하는 대가로 군사용 소총을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이처럼 철저히 미국 무기 중심이었던 중동 시장이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으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 방산기업들은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만 외국에 무기를 수출할 수 있는데, 이것이 되레 중국과 러시아를 도와주는 꼴이 되고 있는 것. 영국 런던의 싱크탱크 국제전략연구소 소속 톰 월드윈 연구원은 “미국의 무기 수출 제한이 이어질 경우 사우디는 성능이 좀 떨어지더라도 중국이나 러시아산 무기 등 대안을 선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중동지역에 전투기 및 군용 헬기 등을 공급하고 있는 이탈리아 방산기업 레오나르도의 알렉산드로 프로푸모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은 기술적인 면에서 매우 우수한데다 다른 경쟁자에 비해 강력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중국은 고객들에게 훨씬 융통성 있는 지불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특히 덜 부유한 나라들과의 무기 거래를 성사시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중동 무기시장의 판세 변화는 이 지역 내 미·중·러의 영향력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중국·러시아는 최근 중동지역에서 군사·경제적 뿌리를 빠르게 내리고 있다. 지난 수년간 중국은 예멘과 아덴만을 사이에 둔 채 마주보고 있는 동아프리카 국가 지부티, 그것도 미군기지 바로 옆에 군사기지를 개설했다. 중국 정부는 또 지난 2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중국으로 초청, 에너지·투자·반(反)테러 등 여러 협약들을 체결하는 등 중동과의 경제적 관계도 강화하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시진핑 중국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UAE를 방문해 13개의 협정에 서명하기도 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무기 수출국인 러시아 역시 2015년 시리아 내전 개입 이후 꾸준히 중동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오고 있다. 로스네프트 등 러시아 석유 기업들은 이라크에서부터 리비아까지 중동지역 내 여러 나라와 거래를 맺고 있으며, 러시아 국영기업들은 내전으로 파괴된 시리아 재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